얼마 전의 일이다.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연락이 왔다. 수능 디데이까지 남은 기간이 1로 시작하니 불안했던 건지, 수시 불합격 소식부터 수능에 대한 불안감, 입시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여러 고민을 토로하더니 급기야는 두렵다며 흐느꼈다. 뭐가 두려운지 물으니 그 아이의 대답은 시선이었다. 소위 말하는 좋은 학교에 가지 못했을 때 부딪힐 명절날 친척들의 시선, 친구들, 부모님의 시선이 두렵다고 말했다.

나도 같은 순간을, 두 번씩이나 경험했기에 더욱 안쓰러웠다. 두 번째 수능 응시를 결심했을 때는 여러 동기가 작용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시선이었다. 그 아이처럼 친척들의, 친구들의, 부모님의, 궁극적으로는 나를 볼 나의 시선이 버거웠기 때문이다.

 

간판, 그 이상의 의미

소위 말하는 대학교 간판, 학벌은 매우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성적은 어린 시절의 교우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친구 가려 사귀라는 유서 깊은 말이 있다. 성적이 가림의 기준이 되는 경우는 꽤 있다. 공부를 못하는 친구보다 잘하는 친구와 가까이하는 것을 권하는 어른을 한 명쯤 보았거나 들은 적이 있지 않은가?

대학교 입학을 앞두면 학벌의 힘은 더욱 커진다. 3 시절 자주 들었던 학과보다는 학교’, 이 말을 들어본 사람이 필자 뿐은 아닐 것이다. 주위 어른들에게서도 많이 들었고, 학과보다는 학교의 이름을 좇아 진학한 선배들의 이야기와 학과보다는 간판이라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게 적지 않은 학생이 평소엔 관심도 없던 분야를 학벌을 위하여 전공한다. 또한 사회에서는, 학벌은 하나의 평가 기준으로 작용한다. 좋은 학교 출신이라면 좋은 시선을, 반대의 경우에는 멸시의 시선을 던진다. ‘지잡이라는 단어의 존재는 이를 증명한다.

이처럼 학벌은 교우관계, 진학, 진로 사회적 위신 등 생의 많은 부분에 큰 영향력을 끼친다. 그러나 이런 극심한 학벌주의가 정의로운지는 또 생각해볼 문제이다.

 

 

왜 부정의한가?

우리는 한 영역에서의 성공이 다른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칠 때 부정의하다고 느낀다. 한 분야의 성공이 합당한 이유 없이 다른 분야의 성공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부정의하다고 느낀다. 돈으로 지위를 사는 뇌물은 경제적 분야의 성공이 합당한 이유 없이 돈으로 살 수 없는 분야의 성공으로 이어지기에 부당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극심한 학벌주의도 같은 이유로 부정의 하다. 학업 능력이 뛰어나 좋은 성적을 얻은 것은 분명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 칭찬이 학업적 부분에서 벗어나 다른 영역까지 침범한다면 그것은 분명 부정의이다. 좋은 친구를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성적을 내세웠을 때 거부감이 들었다면 이러한 이유에서다.

학업적 성취를 얻지 못했다고 타인에게 비난받을 이유도 없다. 학업 능력 부족은 타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러니 제삼자는 그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지잡이란 단어는 개인을 향한 멸칭으로 널리 쓰인다.

학교의 이름 때문에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로 평가받고, 학교의 이름 때문에 도를 넘는 비난을 받는다. 대학의 이름으로 인하여 정도를 벗어나는 이익과 불이익이 쏟아지는 이 상황이 바로 부정의이고 내 학생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시선들의 실체이다

이 시선들로 인하여,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는가보다 어디에서 배우는가에 더욱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어떤 이는 운이 좋아 의외로 본인의 적성에 맞는 과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적성과 맞지 않게 진학하여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고 있다.

 

이름이 아닌 의미를 찾기를

아직 20대 초반의 학부생인 나는, 경험도, 지식도 없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선뜻 말하지 못하겠다. 그저, 내 학생의 눈물에 마음이 아리고, 나도 학벌주의에 찌들어 있지는 않을까 경계할 뿐이다. 오늘 아침엔 진눈깨비가 내렸다. 예년의 1수능은 추웠어도 눈 비슷한 것은 찾아볼 수도 없었는데, 12월인 만큼 아무래도 이번 수능은 더 추울 건가 보다. 통화음 너머로 눈물 훔쳤을 그 학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더욱 시리다. 시선이 두려운 그가, 그리고 다른 모든 수험생이, 부담감을 이겨내어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있기를. 대학의 이름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