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호] 제11회 광주비엔날레 ‘제8기후대(氣候帶)’ 열려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이 돋보였지만, 작품이 주제와 연관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올해로 11회를 맞이한 광주비엔날레가 9월 2일부터 11월 6일까지 66일간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의재미술관 ▲무등현대미술관 ▲우제길미술관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미테-우그로 등에서 열렸다. 37개국 101명의 예술가가 참여한 이번 비엔날레의 제목은 ‘제8기후대(예술은 무엇을 하는가?)’이다. 온도·밀도·기후가 모두 변한 상상의 세계를 가정하여 예측하고 미래에 대해 무언가를 행할 수 있는 예술의 능력과 역할에 대한 탐구와 기대를 표현해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5개의 각 전시실별로 열대, 온대 등 서로 다른 기후 분위기로 꾸며 온도도 달랐으며 광주 곳곳의 외부 전시장에도 작품을 설치하여 지역과의 소통을 추구했다.
◇ 광주비엔날레의 역사
‘비엔날레(Biennale)’라는 말은 이탈리아어로 ‘2년마다’라는 뜻으로 1895년 베니스에서 황제의 은혼식을 기념하는 국제적 미술전람회 개최를 계기로 시작된 국제현대미술전시회를 일컫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술교류가 국제적으로 활발해짐에 따라 각지에서 대규모 국제 미술전시회가 기획되었으나 준비관계 또는 각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동향을 알기 위해 주기적으로 개최하게 됐다.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 광복 50주년과 ‘미술의 해’를 기념하고 한국 미술문화를 새롭게 도약시키는 한편 광주의 문화예술 전통과 5·18광주민중항쟁 이후 국제사회 속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광주 민주정신을 새로운 문화적 가치로 승화시키기 위해 창설됐다. 그 뒤로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예술문화 현장에서의 만남과 소통을 확대하기 위하여 현대미술과 관련된 이벤트 또는 참여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2014년에는 세계적 권위의 미술 인터넷 매체인 아트네트(Artnet)가 비엔날레의 역사와 관객 수, 예산, 영향력, 큐레이터 등 다양한 지표를 바탕으로 선정한 세계 5대 비엔날레에 베니스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 휘트니비엔날레, 마니페스타와 함께 선정되기도 했다.
◇ 영상·설치·지역특색반영 등 다양한 시도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과거와 다르게 영상 작품을 많이 설치한 것이 특징이었다. 특히 2전시실은 영상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깜깜한 공간에서 편안하게 누워서 관람하도록 꾸며놓기도 했다. 박보나 폴리 아티스트(영화 속 사운드 효과를 만드는 직업)의 <1967-2015>(2015)라는 작품은 양동이나 대걸레, 캔 등의 생활용품들이 무질서하게 가득 차 있는 스튜디오에 쭈그리고 앉아 있거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을 담았다. 1967년 충남 청양의 구봉광산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에서 매몰됐다 구조된 광부의 체험을 사운드로 재현한 작품으로 영화,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노동의 의미를 일깨운다.
독일 출신 나타샤 사드르 하기기안의 <Pssst 레오파드 2A7+>(2013~)는 어린이용 장난감인 레고 블록으로 독일 군용 탱크 ‘레오파드 2A7+’와 동일한 면적으로 깔아놓은 설치 작품이다. 독일 무기 제조업체인 ‘크라우스 마파이 베그만 사’가 도시에서 일어나는 분쟁·데모 진압용으로 생산된 탱크를 장난감을 통해 재해석함으로써 점점 군대식으로 변하는 현대사회를 성찰하고 있다. 작품 위에 비치된 헤드셋을 통해 작품과 같은 주제로 작곡된 음악을 들으며 오늘날 도시의 상황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
개최지역의 특성을 담은 작품도 찾아볼 수 있었다. 더그 애쉬포드의 <민주주의의 움직임이 있었던 한국의 장소들에 그림을 들고 가서 찍은 사진들, 그리고 무엇이 이루어졌는지 보여주는 네 개의 예시들>(2016)은 5·18광주 항쟁의 기념 현장, 투옥과 죽음의 장소, 더 큰 열망이 여전히 자라고 있는 장소에서 시민들이 작가의 ‘미완성 그림’을 들고 있는 장면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저항의 가능성은 다시 만들어진 역사와의 감정적 연결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애쉬포드의 작품에 대한 코멘트에서 정치와 미학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 시민의 요구 수용이라는 과제 남아
집계에 따르면 총 23만 7000명(4일 기준)이 전시회를 찾았다. ‘나도 아티스트’와 같은 프로그램 참여까지 합치면 총 관람객은 36만 6천 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는 작년 19만 7000명에 비해 4만 명이나 늘어난 수치다. 관광객 수만 봤을 땐 이번 비엔날레가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이나 전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광주’라는 공간만 제공했을 뿐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주제를 선정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난해한 작품들뿐이라서 진정으로 작품을 느끼고 이해할 수 없었다는 의견도 있다. 한 관람객은 “주제와 작품들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도록을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중성이 결여된 전시회”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광주 문화계의 한 인사는 “광주비엔날레는 학생들의 좋은 소풍장소일 뿐 현대미술의 트렌드를 견인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점점 퇴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는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 중요한데 아직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며 “인프라스쿨이나 시민과 함께하는 예술감독·큐레이터들의 대학 강의·토론 등을 통해 지역문화예술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는 방안을 진행 중이다”고 밝혔다.
광주비엔날레가 시민들에게 인정받고 위상에 걸맞은 전시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역과의 연계성을 중점에 둔 주제선정, 자세한 작품설명을 통한 이해 돕기 등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