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호/시론] 관계적 사고

2016-10-09     김한별(교육학과) 교수

 

학교 다니던 시기에 공부한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평생을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부단한 배움을 통하여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전 생애에 걸친 배움을 계속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의 문명을 창조하고 또 계속해서 발달해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다양한 능력은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던 잠재력을 계발하면서 드러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컨대, 인간이면 누구나 일정한 언어적, 인지적 발달수준에 도달하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나 그것을 보다 유창하고 조리있게 표현하여 타인을 설득하거나 공감하도록 이끌 수 있는 능력은 개인의 후천적인 학습경험의 차이에 따라서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학교교육 경험의 결과로 귀결되는 것이라기보다, 평생에 걸쳐서 다양한 삶의 장면에서의 경험의 축적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배움은 인간의 삶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평생에 걸친 배움에 대한 강조는 결코 인위적으로 치장한 슬로건이 아니다. 마치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계절이 바뀌듯, 변화하는 사회 안에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려는 인간에게 자연스럽게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배움이 다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자신을 제외한 이웃과 공동체에게 해가 되는 배움도 분명히 존재한다. 전쟁, 대량학살, 컴퓨터 바이러스 등은 배움을 통해 터득한 유능한 재능을 그릇된 가치관에 따라서 맹목적으로 적용했기 때문에 인류가 접하고 고통받는 사례의 일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움을 끊임없이 행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자세로 배움을 행하느냐가 보다 더 궁극적이라 하겠다. 다시 말하면 보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배움의 자세가 필요한 셈이다. 이런 점과 관련하여 배우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소위 관계적 사고의 태도가 강조될 필요가 있다.

관계적 사고란 어떤 현상을 이해할 때 부분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시각에서 전체에 포함된 각 요소들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를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좀 더 쉽게 비유를 들어서 이야기하자면, 건강한 숲에는 싱싱한 나무와 식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나무와 식물들도 있으며, 이미 죽어서 썩은 나무와 식물들이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식견이다. 사실 하나의 숲이 건강하려면 죽어서 썩은 나무와 식물이 거름이 되어 새롭게 성장하는 나무와 식물에게 소중한 자양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새롭게 움트는 나무와 식물 역시 언젠가 썩어야지만 숲의 건강함은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관계적 사고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이분법적 사고 -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하여 바람직한 것은 개발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폐기하려는 사고방식 - 을 넘어서는 것이다. 관계적 사고는 당장의 상황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을 제거하는데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가능성까지 엿보려고 노력한다.

관계적 사고는 특히 교육자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왜냐하면 교육이란 인간을 다루는 학문이자 실천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만나 본 경험 많은 교사들은 학생의 문제를 잘 다루기 위해서는 보이는 것에 대해서만 주목하며 해결책을 찾으려고 들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니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지금 내 앞에서 드러나고 있는 학생의 문제는 수면 위에 떠올라 있는 빙산의 일부일 뿐이며,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면 아래까지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란 학생의 삶의 존중하고 학생의 성장을 돕는 존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의 삶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체 안에서 당면한 문제를 가늠할 수 있는 사고습관을 가질 때, 참된 교육자로서 학생의 바람직한 성장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교육자의 길을 꿈꾸는 우리는 지금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진지하게 자문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