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호] 탈식민주의와 언어논쟁: 소잉카를 중심으로
칼리반과 언어주권
세익스피어의 희곡 <태풍>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본 떠 비서구에서 진행된 언어논쟁 중의 하나가 프로스페로와 칼리반 논쟁이다. 프로스페로의 언어를 놓고 그간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논쟁은 기실 칼리반의 언어주권을 어떠한 방식으로 복권할 것인가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칼리반의 언어주권을 회복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는 그 안에 다양한 근대의 모순이 착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 경제적 착취, 모국어의 압살 등속을 비롯한 식민주의 혹은 신식민주의적 유제와 종 다양한 세계의 문화 질서를 시장의 논리에 따라 획일적으로 재편하는 동시대 신자유주의의 무차별한 공세를 지혜롭게 극복하는 문제와도 궁극적으로는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잉카와 평론가 삼인방의 보편성 논쟁
‘보편성’이라는 개념이 아프리카 문학에 대해 가하는 폭력성은 ‘네그리뛰드’(193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된 아프리카 문화부흥운동)의 논쟁 과정을 살펴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파리의 유학생이던 카리브해 출신의 에메 세제르와 아프리카 세네갈 출신의 레오폴드 상고르에 의해 주창된 네그리뛰드는 유럽의 팽창 과정에서 상실한 아프리카 고유의 전통을 복원하려는 미학적 투쟁이었다. 아프리카 전통의 복원 과정에서 네그리뛰드의 주창자들은 전통의 낭만화 혹은 심미화의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식민화에 의해서 현실 규정력을 상실한 전통을 부활시키는 방법은 현실의 논리를 초월한 무의식의 세계, 즉 초현실 세계의 구축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아프리카 특유의 원형적 전통 만을 미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아프리카의 고유한 동, 식물계, 우주관, 종교관 등이 그들 글쓰기의 전일적인 주제이자 소재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소잉카는 네그리뛰드의 이러한 전통주의를 “신타잔주의”라고 조롱한다. 그는 아프리카에도 ‘타자기’, ‘석유, 화학 공장’, ‘첨단 과학시설’ 등과 같은 현대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전통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오히려 문명에 대한 아프리카인의 왜소함을 간접적으로 추인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고 개탄한다. 그것은 ‘기차’를 ‘강철 뱀’(iron-snake)으로, ‘비행기’를 ‘강철 새’(iron-bird)로 착각하는 아프리카인의 우스꽝스런 시대착오적인 이미지를 상업주의적으로 조작하는 헐리우드의 왜곡된 전형화에 빌미를 제공할 뿐이라고 경고한다. 그에게 아프리카인은 더 이상 부시맨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범속한 유럽의 문명사회와는 다른 아프리카의 전근대성, 정신성, 주술성 등에 대한 지나친 강박과 집착은 오히려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강변한다.
소잉카의 네그리뛰드에 대한 비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호랑이(Tiger)는 자신이 호랑이임(Tigritude)을 뽐내지 않는다’는 말로 네그리뛰드의 미학적 제스츄어를 희롱한다. 그러자 친웨이주, 제미, 마두부이크 삼인방은 소잉카의 ‘티그리뛰드’ 논의를 역비판한다. 이들 삼인방은 네그리뛰드가 소잉카가 비판하는 ‘티그리뛰드’의 약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유럽의 문화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아프리카 특유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아프리카 현대문학에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이야기 양식인 ‘오라추어’를 접목하여 아프리카의 고전적 가치를 부활케 하는 혁명적인 역할도 수행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은 오히려 소잉카의 ‘네그리뛰드’ 비판과 ‘신타잔주의’라는 조롱이 보편주의라는 유럽중심주의적 상상력의 한 단면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그것이 소잉카의 아프리카에 대한 콤플렉스로부터 연유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소잉카와 이들 삼인방 간의 ‘보편주의’ 논쟁은 루이스 응코시(Lewis Nkosi)와 응워가(Nwoga) 간의 ‘신, 구 간의 세대논쟁’으로 비화된다. 소위 남아공의 구세대를 대표하는 응코시는 신세대 작가들이 아프리카의 고유한 전통 중의 하나인 공동체 중심주의와 집단정신을 경시하고 지나치게 은밀하고 사적인 개인의 내면세계 속으로만 침잠해 들어가 사회의식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신세대를 대표하는 응워가는 그것이 세대 간의 차이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응워가는 동시대 아프리카 사회가 그의 선배 세대인 응코시의 시대처럼 식민지 본국을 상대로 독립투쟁을 벌이기 위해 모든 미학적 투쟁을 정치투쟁으로 전환하고 모든 개인성의 희생을 담보로 집단의지를 표출하던 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강변한다. 따라서 그는 식민주의 시대처럼 거시적이고 묵계적인 시대정신이 통하지 않는 해방 이후의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개인의 미시적인 내면성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성찰의 대상임을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