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호]학생 죽음으로 내모는 특성화고 현장실습, 교육인가 노동인가
임금 체불, 초과 근무 등으로 학생들의 권리 침해 심각해
지난 5월 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열아홉의 젊은 노동자 김 씨가 죽었다. 김 씨는 특성화고등학교(이하 특성화고) 출신으로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서울메트로의 하청업체인 은성PSD에 현장실습을 나가 지난해 11월 정식으로 취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김 씨는 정식으로 은성PSD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김 씨는 과도한 업무량과 시간제한 탓에 밥을 거르며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사고가 발생한 뒤, 시민들은 김 씨의 죽음에 슬퍼했고, 바뀌지 않는 현실에 분노했다. 구의역 사고는 하청이 만연한 한국 사회의 노동 구조에 주목을 끌게 하였다. 그러나 김 씨의 죽음 뒷면엔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 역시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 특성화고등학교와 현장실습 제도의 역사
특성화고는 1998년 3월 개정, 공포된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91조에 따라 운영되는 고등학교의 한 형태로, 특정 분야의 인재 및 전문 직업인 양성을 위한 특성화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초기의 특성화고는 특수목적고등학교(이하 특목고) 중에서도 예체능 계열의 학교에 가까운 성격이었으나 1998년 이후부턴 공업고등학교나 상업고등학교를 비롯한 전문계고등학교 중 우수한 학교도 특성화고등학교로 전환됐다. 2009년부터는 과도하게 많은 전문계고가 특성화고로 전환되기 시작했고, 2012년엔 모든 전문계고가 특성화고로 전환됐다. 한편 2010년부터 특정 분야의 전문 직업인을 국가 차원에서 양성하기 위한 '마이스터고등학교'가 새로이 설립됐고, 기존 특성화고의 특목고적 성격은 마이스터고등학교로 넘어갔다. 즉 지금의 특성화고는 과거 공업고등학교나 상업고등학교와 같은 전문계고의 다른 명칭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장실습 제도는 1963년 제정된 「산업교육진흥법」에 의해 도입됐다. 이 법에 따라 특성화고 학생은 재학 중 일정 기간 동안 지정된 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이수해야 한다. 그러나 현장실습은 ▲산업체의 적극적 참여 부족 ▲체계적인 실습 프로그램 미비 ▲관련 예산 부족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의 ‘현장실습생 인권실태조사 결과 보고서(2005)’에 따르면 현장실습 과정에서 저임금 노동 착취과 인권 유린 등의 문제가 발생했고, 졸업 후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까지 파견형태의 현장실습을 의무로 이수해야 해 구색 맞추기 식의 프로그램이 난립했다. 이에 교육부는 2006년, 교육부 훈령을 통해 현장실습의 대상과 시기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내용의 ‘실업계고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2008년 시행된 학교 자율화 정책 탓에 이 방안은 무산됐고, 현장실습 운영에 관한 지침은 시·도교육청 및 학교로 위임됐다.
◇ 특성화고 학생들과 법적 조치
특성화고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통해 입은 피해 사례는 끊임없이 발생했다. 고용노동부가 2014년 현장실습생 사용사업장 117곳을 근로 감독한 결과 임금 및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곳이 62.4%, 초과·야간근무를 시킨 곳이 28.2%에 달했다. 밝혀지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자 교육부는 2012년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현장실습생의 권리는 노동관계법으로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성동근로자복지센터의 김성호 공인노무사는 “이 같은 법으로 학생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면서도 “교육부는 현장실습을 노동의 일환이 아닌 교육으로만 판단해 학생들을 산재보험 적용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헀다. 그럼에도 “개별사항으로 간다면 학생들도 근로자로 취급되기에 실제로 보험처리를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학생들이 법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일은 드물다. 김성호 씨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학생들이 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권리를 주장해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불신이 팽배하고 취업률에 목을 맨 학교가 법적인 권리를 주장하려는 학생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위와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우리 센터에서 학교로 찾아가 교육을 하거나 주민센터에서 피해를 입은 학생들을 조사하고 인터뷰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 정부와 회사, 그리고 학교가 문제를 만들었다
현장실습이 악습이 된 이유에 대해 교사들은 정부와 학교, 그리고 기업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 의정부의 특성화고에 근무하시는 김경엽 교사(전국교직원노동조합)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현장실습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드는 등 현장실습 문제가 아주 방치됐던 것은 아니”라며 “이명박 정부 때 학교 자율화 정책이 실시되며 매뉴얼을 지킬 필요가 없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하여 이명박 정부 시기 취업률에 따라 예산을 차등지급하는 정책을 펼쳤고, 학교 역시 그 영향을 받아 취업률에 목매게 됐다는 것이다.
김경엽 교사와 다르게 김성호 노무사는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가 문제라고 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현장실습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현장실습은 교육인지 노동인지 알 수가 없다”면서 “공장에서는 값싼 노동자가 필요하고, 학교에서는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서는 취업률이 중요하다는 측면이 맞물려 이런 상황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경엽 교사는 현장실습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특성화고 현장실습운영법’을 제안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운영법'은 그동안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학생을 혹사시키면서 정작 권리를 주장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법인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을 대신해 현장실습을 기능교육으로 규정하고, 현장실습생이 노동자이면서 학생으로서 법적 지위를 명확하게 하는 법이다. 김경업 교사는 “미래 세대인 학생들을 위해 ‘특성화고 현장실습운영법’을 제안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