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호] 다른 언어로 다투는 부부
휘파람새는 지방별로 다른 울음소리를 내고 십자매는 암수가 다른 울음소리를 낸다지만 인간의 언어가 가진 변이에 비하면 이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인간의 언어는 지역방언(regional dialect), 성별방언(genderlect)을 넘어 개인방언(idiolect)까지도 구분한다. 특정 언어권 내의 언중들은 모두가 ‘한 언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하지만, 동시에 모든 개인이 조금씩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언어 연구는 한 언어권 언중들이 공유하는 언어 체계, 즉 ‘한 언어’를 주로 다루지만, 사회언어학(siciolinguistics)은 지역, 직업, 계층, 성별과 같은 집단의 ‘다른 언어’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이 가운데 성별에 따른 언어의 차이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가령 한국어에서 ‘어머!’ 같은 감탄사는 사실상 여성의 전유물이고, 중국어에서는 남성의 어기조사 사용 비율이 여성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영어에서는 여성이 부가의문문을 더 많이 사용한다.
영어와 스와힐리어를 사용하는 탄자니아에서는 두 언어에 모두 능한 이중언어자 부부가 부부싸움을 할 때 남편은 스와힐리어를, 부인은 영어를 일관되게 사용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이 관찰되었다. 아프리카 남동부의 고유 어형인 스와힐리어는 아무래도 전통적인 가치를 대표하는 코드이고, 외래 어형인 영어는 새로운 세계의 가치를 대표하는 코드다 보니 부부싸움 상황에서 두 가치에 대한 부부의 상반된 태도가 사용 언어를 통해 극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여기에는 단지 언어 사용의 문제만이 아니라 영어와 스와힐리어를 대하는 이들의 언어태도(language attitude) 문제가 개재되어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어형에 대해 서로 다른 언어태도를 가진다. 부동산 중개소에 전화를 걸어 방이 있는지를 해당 지역 사투리로 물었을 때와 다른 지역 사투리로 물었을 때 중개인의 대답이 달랐다는 실험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문장이나 단락 층위의 어형 차이만이 아니라 단어의 층위에서도 남녀의 차이나 언어태도의 차이가 나타날까? 필자는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복사 – 카피’, ‘취소 – 캔슬’과 같이 ‘의역어 – 음역어’ 차이를 가지는 28 쌍의 중국어 차용어를 사용하여 ‘복사하기로 했던 거 취소해 – 카피하기로 했던 거 캔슬해’와 같은 9 쌍의 문장을 만들고, 이를 동일한 화자의 목소리로 녹음한 다음 네 개 지역의 중국인 960명에게 들려주고 어느 화자가 더 키가 크고 잘 생겼는가, 누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가 등등의 질문에 답하도록 했다.
실험의 결과 남성 청취자는 의역어를 사용하는 여성 화자에 대한 뚜렷한 선호를, 여성 청취자는 반대로 음역어를 사용하는 남성 화자에 대한 뚜렷한 선호를 보여주었다. 이는 일견 탄자니아 이중언어 부부의 경우와 일치하는 결과처럼 보인다. 남성은 의역어에 대한 선호를, 여성은 음역어에 대한 선호를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만 해석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도 있다. 화자가 자신과 동일한 성별인 경우 남성은 음역어를 쓰는 남성 화자에 대해, 여성은 의역어를 쓰는 여성 화자에 대해 더 높은 평가를 했기 때문이다. 언어태도가 언어의 미래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라고 할 때, 의역어와 음역어가 꾸준히 경쟁 양상을 보이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세계는 절반의 남성과 절반의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언어도 그러하다. 페미니즘과 여성혐오가 키워드가 되는 시대에 남녀의 소통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탄자니아의 부부들만 서로 다른 언어로 다투는가? ‘한 언어’를 쓰고 있는 우리도 실은 ‘다른 언어’로 다투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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