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호/교육현장 엿보기] 첫 발령의 기억
저는 6년차 중등 국어과 교사입니다. 지난 6년을 더듬어 제일 기억에 남는 시기가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첫발령 때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교사들에게 첫발령의 설렘과 기대는 매우 강렬하게 각인되어 원로 선생님들고 가끔 자신의 초임 시절을 얘기하곤 하실 정도로 그 기억은 평생의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2011년도 경남 거창이라는 지역에 첫발령을 받았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근무하게 된 학교는 거창 지역에서 문제 아이들만 모아 놓은 학교였기 때문에 학교 분위기가 안 좋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현직에 계신 선생님들도 기피하는 학교였습니다.
개학 첫날은 교무실에서 간단하게 회의를 하고 담임으로 배정 받은 반에 들어가 담임 시간을 갖는 일정이었습니다. 반에 들어가니 남학생 10명, 여학생 10명 총 20명의 학생들이 무질서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남학생들은 염색에 귀걸이를 한 아이들이 절반을 넘었고 여학생들은 불만 섞인 듯한 눈초리로 저를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교실 안은 담배 냄세와 향수 냄세가 뒤섞여 있어 개학 첫날부터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앞이 막막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실업계 고등학교에 지원했다가 떨어져서 온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대부분은 공부에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왜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출근하면 학생들 지각, 결석, 조퇴를 체크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고 그런 이유로 학생들과 다투는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보니 점점 학생들에게 정이 떨어져 다른 학교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반에서 한 학생이 장기 결석을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집에 연락을 해도 연락이 되지 않고 가정 통신문을 보내도 답이 없어 직접 그 학생의 집에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2번이나 갈아 타 50분 동안을 달려야 했습니다. 그 길을 그 학생은 매일 왕복으로 왔다갔다 했던 것이었습니다. 집과 가까운 학교에 지원했다가 떨어졌기 때문에 그 불편을 매일 감수해야 했던 것입니다. 늦잠이라도 자는 날이면 한시간 이상 지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학교에 가더라도 꾸지람을 듣거나 벌을 서야했기 때문에 당연히 학교에 가기 싫었을 것입니다.
학생의 집에은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형편이 더 어려웠습니다. 슬레이트로 올린 지붕에 방 한칸 주방 한칸이 전부인 집이었습니다. 방에 들어서니 원룸방 정도 되는 크기에 옷장, 티비, 이불장이 빼곡하게 있어 한명이 생활하기에도 좁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곳에서 학생은 아버지, 형과 함께 생활했던 것입니다. 부모님은 학생이 초등학교 때 이혼을 하시고 지금은 아버지가 막노동 일을 하고 있어 아이들의 생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니 지금까지 학교에 나와 준 그 아이가 대견해 보였습니다. 그일을 계기로 반 학생들의 집에 가정 방문을 가게 되었고 제가 담임으로 맡고 있는 반 아이들의 가정 형편이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정에서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해 아이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 아이들을 학교에서도 버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반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해서 징계를 받게 되면 모든 잘못의 책임을 학생의 탓으로 돌렸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학생의 행동에는 가정과 학교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고 막연하게 수업을 잘 하는 교사가 되기 보다는 학생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교사가 더 훌륭한 교사라는 나름대로의 좌우명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첫 발령, 첫 학교, 첫 담임, 첫 아이들은 제가 교직 생활을 해 나가는 데 무엇에 중심을 두어야 하는지를 알려 준 뜻 깊은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