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호] 새로운 교원노조 결성 움직임 본격화, “단일 체제에서 연합체로의 지형 변화 필요”
전교조 “분열이다” vs, 재편모임 “윈윈 가능해”
지난 27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대의원회에서 노조원의 노조 복수 가입 제한 규약 조항이 신설됐다. 과거 전교조의 지도부를 포함한 일부 조합원들과 비조합원들이 교육노동운동 재편모임(이하 재편모임)을 결성하고 새로운 교원노조의 설립 움직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에 대한 조치였다. 이를 두고 재편모임 측은 조합원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성급하고 비민주적인 의사결정이라 비판하는 한편, 전교조 측은 혼란을 막고 분열을 방지하기 위한 결정임을 호소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감수하고서 지켜야 할 가치 있어, 투쟁을 통해 다시 합법노조 인정받을 것”
전교조는 1989년 창립하여 10년간의 투쟁을 통해 1999년 합법적 노동조합으로 인정됐다. 그러나 2013년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조항에 따라 전교조 조합원 중 9명이 해직교사라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법외노조 공고를 받았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같은 해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법외노조를 감수하고라도 해고자 배제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하기로 결정하였다. 법외노조가 되면 기존 합법노조로서 받던 지원이 중단되고, 교육 당국에 대해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며, 노조 전임자들은 학교로 다시 복직해야 한다. 그러나 전교조는 해고된 교사들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는 것이 전교조 교육운동의 주요한 정신과 민주노조로서의 자주성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판단하여 희생을 감수하기로 했다. 2014년 12월 17대 전교조 위원장 선거에서는 법외노조 탄압에 맞선 투쟁을 강조한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이 당선되어 법외노조 탄압 대응과 교원노조법 개정을 위한 투쟁을 중점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전교조는 이번 해 1월 법외노조 판결에 대한 2심 소송에서 패소하고 대법원에 상고하여 현재 최종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 재편 모임, “합법노조 인정 중요해”
재편 모임은 전교조가 법외노조 판결을 받은 이후 본격적으로 새 교원노조 결성 준비를 시작하였다. 재편 모임 측에서는 전교조의 기존 입장과 달리 합법적 틀 안에서 노조를 운영해야 한다고 본다. 이들 역시 해직조합원을 조합원으로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현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한다’는 현행교원노조법의 조항은 법 개정운동을 통해 고쳐야 할 부분이라는 데엔 동의한다. 하지만 법을 고치기에 앞서 5만여 명의 조합원의 법적 자격을 잃게 하고, 수십 명의 해고자를 만들어 내는 것 또한 옳지 않다고 본다. 교섭권이 없는 조합원들이 느끼는 박탈감을 고려하고, 실질적인 교육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선 합법적인 틀 안에서 노조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은형 재편모임 공동대표는 “단순히 해직 조합원을 조합원으로 인정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10년동안 큰 희생과 각고의 투쟁으로 쟁취한 합법노조를 쉽게 포기하는 전술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은 "전교조가 현행 교원노조법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전면적 개정을 위해 단결투쟁하는 시기에 그 악법을 기반으로 전교조 내부에서 새 노조를 추진하는 것은 민주노조의 상식으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단일체제냐, 시도노조의 연합체냐
전교조의 본질적인 시스템에 대한 의견도 갈리고 있다. 전교조는 교육권한이 중앙권력에 집중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특수적인 상황에는 단일체제가 적합하다는 판단 하에 현재 단일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재편모임은 이러한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재편 모임은 현재 전교조에서 상부의 지도층 이외에 하부층 조합원들은 조직내에서 거의 영향력이 없는 상태로, 조합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제대로 수합하지 못한 채 일정 정파 출신의 지도부가 과도하게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재편모임은 전교조를 선진국들의 교육노조와 같이 자주적인 급별, 설립자별, 교과별 시도노조들의 연합체로 재건설할 것을 제안했다. 작은 단위의 의견들이 모아져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교조 측에서는 지방교육자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교육의 분권화와 자율성 보장이 현실화된 외국의 사례를 똑같이 볼 수 없다며 연합체제의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치활동과 교육운동의 균형
재편모임은 교원 노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운동이 아니라 교육운동이라고 보며, 전교조의 명분을 앞세운 정치 투쟁을 비판한다, 그러나 전교조에 따르면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일반적으로 교육은 정치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특히 한국처럼 정치권력이 교육을 지배하는 체제에서 교육 문제는 정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정부 정책을 평가하고 비판함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이러한 활동을 부정적 맥락에서 ‘정치 투쟁’으로 규정함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 재편모임, “전교조와 윈윈 가능하다”
전교조는 새 교원노조의 설립을 내부 분열로 본다. 하지만 재편모임 측은 전교조와 새로운 노조가 윈윈할 수 있다고 본다. 재편모임은 전교조 뿐만이 아니라 어느 노조에도 가입되어있지 않은 35여만명의 교사들도 포용할 수 있는 중간단계적 노조를 지향한다. 김은형 재편모임 공동대표는 “전교조 조합원을 빼간다기 보단 의지할 곳 없는 다수의 교사들을 위한 좀더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조직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전교조와 경쟁하기보다 교육운동의 판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의사를 표현했다.
지난 7일 재편모임은 전교조 측에 복수노조, 복수가입에 대한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재편모임은 12월에 서울에 새로운 노조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김은형 재편모임 공동대표는 “전교조에 평생을 바쳤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결정을 내리기 까지 많은 고뇌와 아픔이 있었다”며 “새 교원노조를 설립하는 것을 단순히 전교조의 분열이나 세력 약화가 아닌 본질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로 봐 달라“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