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호] 끝나지 않은 옥시 사태, 소비자 행동 진행 중

화학제품 판매량 감소하는 등 효과 있으나 판매자 차원의 대처는 미흡

2016-07-12     황인수 기자
▲ 지난 17일,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이 홈플러스 청주 성안점에서 옥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 황인수 기자

지난 6일, 영국 옥시레킷베킨저(이하 옥시) 영국 본사 앞에서 피해자들이 사과를 요청했으나,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1996년부터 판매가 시작돼 2011년 판매가 종료된 가습기 살균제는 지금까지 밝혀진 피해자만 221명에 달한다. 피해자들은 2012년부터 소송을 제기했으며 지금까지도 조 사가 진행되는 중이다. ‘안방의 세월호’라고 불리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경과와 책임 소재, 그리고 시민사회의 대처를 확인해보았다.

◇ 2006년부터 시작된 가습기 살균제 살인 사건, 10년 지난 지금까지 수사 진행중

지난 2006년, 국내에서 갑작스런 신종 폐 질환으로 사망한 환자들이 발생했다. 이러한 일이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자 의사들은 상호 교류를 통해 숨진 환자들이 동일한 질환을 겪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치료 과정에서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이 사망의 원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의사들의 원인 규명으로 이전까지 미온 적으로 대처하던 보건복지부도 2011년에 조사에 착수했다. 검사 결과 환자들에게서 신종 폐 질환을 일으킨 원인은 바이러스나 세균성 감염이 아닌 가습기 살균제인 것으로 추측됐고, 동물실험 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신종 폐질환과 유사한 증상을 일 으키는 것이 확인되면서 2011년 11월 10일, 보건복지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폐 질환의 원인이라고 확정·발표했다. 옥시를 비롯해 가습기 살균제 생산업체들은 2011년 8월에 가습기 살균제의 생산을 중단했으나, 폐 질환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2012년 8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옥시를 포함한 가습기 살균제 생산 회사 측은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며 소송을 이어나갔고, 2013년 2월 검찰은 업체 측의 반론권 보장을 위해 기소중지 결정을 내렸다. 그러다 2015년 10월 검찰은 옥시를 압수수색해 “유해성을 알면서도 안전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혀내었고, 그 이후 MBC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와 KBS·JTBC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올해 4월 19일부터 검찰 측에서 제조업체 소환조사를 시작했다.

◇ 옥시, 지속적으로 문제 상황을 숨기려 위법행위 자행

옥시 홈페이지의 고객 상담 게시판에는 2001년부터 수백 건의 가습기 살균제 부작용 후기 글이 올라왔으나 사측에서 이를 삭제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말부터 수사가 본격화되자 옥시 측이 홈페이지에 올라온 관련 글들을 무더기로 삭제한 사실은 정황상 이번 수사와 관련이 있어 검찰은 이를 복원해 살인죄로 기소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법리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옥시는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편법을 자행하고 있다. 서울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2011년에 옥시는 기존 법인을 해산하고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새롭게 회사를 설립했다. 이는 주주·사원·재산·상호만 그대로 남겨 두고 완전히 다른 법인을 신설한 것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에 대한 옥시의 혐의가 인정되면 위법 행위자뿐 아니라 해당 법인도 처벌을 받지만, 형사 책임을 진 기존 법인이 소멸하면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판례들도 존재하기 때문에 이같은 행동을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더해 옥시 측에서 인체에 유해한 성분들에 대한 연구 결과를 위조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옥시는 검찰의 지시에 따라 한국건설생활환경 시험연구원에 검사를 의뢰했고, 인체에 유해하다는 검사결과가 나왔지만, 옥시는 결과를 수령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도 의뢰해 연구 결과를 받았지만, 불리한 진술은 삭제하고 제출했다.

◇ 이번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정부의 불찰

정부는 옥시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1996년 가습기 살균제 를 처음으로 만든 유공(현 SK케미컬)은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 제조 신고서를 환경부에 제출했다. 흡입하면 해로울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정부는 추가 독성 자료를 요구하거나 유독물로 지정하지 않았다. 1998년 미국 환경청은 이러한 성분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을 경고했으나, 정부는 보고서가 나온지 10년이 넘도록 이런 사실을 파악조차 못했다. 2001년에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들은 위험성에 대해 정부 기기관에 보고하였는데, 정부 기관은 제품의 유해성에 대해 검증도 하지 않고 승인해버렸다. 2003년에는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를 호주로 수출하면서 흡입하면 위험하다는 보고서를 현지 정부에 제출하면서 국내 제조회사에는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더하여 정부은 위 원료에 대해 유독물질이 아니라는 고시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조직과 관리체계의 허점도 이러한 사태를 키웠다. 가습기 살균제는 공산품이라 산업통 상자원부라서 보건복지부나 환경부에서는 어떠한 대처를 내놓을 수 없었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뿐만 아니라 방향제, 약품, 심지어 물티슈 등도 공산품에 포함되기 때문에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추측도 있다. 거기다 정부의 미흡한 대처가 영향을 끼쳤다. 19대 국회 당시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 사고 발생 시, 정부의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당시 새누리당과 정부는 가해 기업과 소비자 간의 문제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나중에 새누리당은 4월 29일 새누리당 원내 대책 회의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보상 특별법을 추진하겠다고 결정하였으나, 국회 환경 노동위원회에서 특별법 및 일반법안의 의결이 무산되었다.

◇ 대형마트 대처 미흡한 한편, 화학제품에 소비자 불신 높아져

이러한 옥시의 행태에 소비자들은 옥시 제품 불매 운동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 지난 15일, 환 경운동연합과 피해자 모임은 서울역 롯데마트 기자회견에서 대형마트를 비롯한 각 유통업체 들의 옥시 제품 판매 중단을 촉구했고, 이후 대형마트 역시 판매 중단에 동참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청주지역만 보더라도 대형마트들이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는 않다.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이성우 사무총장은 “이마 트·홈플러스·롯데마트를 비롯한 대형마트 3사의 경우, 옥시 제품 불매에 참여한다고 밝혔으나 매장에 남아있는 옥시 제품을 처분하는 것이 아닌 새 물건을 들이지 않겠다는 의미였다”며 “이마트는 그나마 많이 줄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으나 다른 마트들은 줄어든 모습이 거의 보 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화학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 도 깊어지고 있다. 4일 인터넷 쇼핑몰 ‘옥션’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2일까지 젖병세정제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4% 감소했으며, 섬유탈취제와 방향제 매출도 각각 41%, 25% 떨어졌다. 오프라인 매장 역시 마찬가지다. 이마트는 지 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의 섬유탈취제와 방충제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3% 떨어졌다. 방향제 매출 역시 10% 줄었고, 같은 기간 옥시 제품의 비중이 큰 표백제와 습기제거 제 매출은 각각 36%, 46% 감소했다.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이성우 사무총장은 이 번 옥시 사태에 대해 “시민들이 화학제품을 쓰지 않으려 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 생각하지만 화학제품들 없이 사는 것은 매우 힘든 일” 이라며 “상대적으로 다른 화학제품들보다 안전 한 생활협동조합의 제품을 홍보하고, 생활 속에서 안전한 화학제품이 무엇인지 시민들에게 알 려주기 위해 시내 캠페인을 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