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호/시론] 총장 후보자께 드리는 당부

2015-12-04     김종우(불어교육) 교수

한 학기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한국교원대신문 기자로부터 이번 학기 ‘종강호’에 실릴 교수시론의 청탁을 받고 보니 다시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참으로 바쁘게 보내야 했던 한 학기였다. 이번 학기 동안 우리 대학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아마도 ‘총장’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앞으로 4년간 우리 대학의 운영을 담당할 새로운 총장 후보자를 선정하는 일이 중요한 만큼, 이는 아주 당연한 일로 보인다.
이번 우리 대학 차기 총장 후보자 선정 과정은 그 시작부터 매끄럽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총장 직선제로의 전환 논의, 현 총장에 의한 전교교수회의의 파행적 운영, 현 총장 불신임을 위한 교수 서명운동 등의 일이 있었다. 그러면서 다양한 차원에서 갈등이 불거졌지만 이제 그 일이 일단락되었다. 물론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따라 또 다른 갈등의 소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선정 과정이 시작되기 전부터 문제가 되었던 방식의 불합리성과 관련하여서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논의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제한된 방식으로나마 확인된 구성원들의 의지가 임명 과정에 잘 반영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이러저러한 사태 추이와 무관하게 일단은 최종 후보자로 선정된 분에게는 축하를 보내고 출사표를 던졌지만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한 분들에게는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앞으로, 정해진 절차에 따라 교육부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이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나는 교수협의회 의장이라는 직책 상 이번 총장 후보자 선정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무릇 선거 과정에는 여러 문제들이 개입되는 것이겠지만, 선거는 결국 약속의 대결이다. 로또식 추첨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장후보자 선정 과정에서도 여지없이 수많은 약속들이 쏟아져 나왔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그 수많은 약속들을 앞에 두고 나는 솔직히 그다지 달가운 심정이 아니었다. 현 총장이 선거 과정에서 내걸었던 수많은 약속들이 지난 4년 동안 철저하게 휴지조각으로 변하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대부분의 구성원들 또한 나와 마찬가지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현재 책임 있는 자리의 어떤 인사는 “선거 공약을 믿은 사람이 문제”라는 부도덕한 발언까지 공공연히 내뱉기도 했다. 그런 상황이고 보니, 어쩌면 “믿은 내가 바보”였는지 모른다.
이번에도 후보를 가릴 것도 없이 뜬구름 위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이는 익숙한 공약들을 또 다시 들고 나왔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선거 과정에서 내거는 약속들이 허황될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안타까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차기 총장 후보자 선정 과정에서 다수의 추천위원들은 후보자의 자질과 인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공약만을 가지고 평가를 해야 했다. 그런 상황을 미리 알고 있던 후보자들로서는 실현 가능성과는 무관하게 공약을 가능한 한 화려하게 치장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좋은 말들을 골라 보기 좋게 차려놓은 공약집을 보고 후보자들을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추천위원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직선으로 선출된 현 총장 역시 4년 전 선거 과정에서 휘황찬란한 약속으로 대학 경영 및 발전계획서를 풍성하게 채워 넣었다. 지금 다시 살펴보니, 당시의 공약집에는 99개의 공약이 대분류와 중분류 항목으로 나뉘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참으로 ‘허황된’ 약속들이다. 이 약속들 중 지금까지 지켜진 것을 헤아려 보자면 다섯 손가락을 한 번씩만 써도 남을 지경이다. 이번에 총장 후보자 추천위원회에서 추천 대상자로 결정된 후보의 공약집을 다시 살펴보았다. 거기에도 여전히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가는 약속들이 많이 눈에 띈다. 
나중에 바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한 번 믿어보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총장 후보자로 선정된 분에게 간곡히 당부 드린다. 앞으로 구성원들을 우롱하면서 “선거 공약을 믿은 사람이 문제”라는 황당한 말로써 “믿은 내가 바보”였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해주시길.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나 모든 구성원들의 마음을 얻고 역량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시길. 그리고 이를 위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기구를 하루빨리 구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