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호] 한국사교과서가 오직 결과적인 현실만을 정당화 한다면
발행: 2014. 02. 24.
1905년 세계사적으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승리한 것이다. 러일전쟁은 포츠머스 협정이 체결되면서 마무리 되었다. 포츠머스 협정은 미국의 루스벨트가 중재하였고 이 사건 덕분에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평화' 덕분에 동방의 한 국가였던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여기서 잠깐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였다고 가정하여 보자. 러시아가 승리하였다면 우리나라는 일본이 아닌 러시아의 지배 아래 놓였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러시아의 지배 아래 놓였다면 우리나라도 러시아의 간섭 아래에서 공산주의 체제를 받아들여 공산주의 국가가 되지 않았을까?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여 우리나라가 공산주의 국가가 되느니 일본이 승리하였기에 그나마 '다행히' 자본주의적 근대 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해석해 본다면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수탈과 착취를 당하는 시기가 아닌 발전된 문명을 받아들여 융합하는 시기가 된다.
결과적으로 조선은 일본에게 멸망하여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고 식민지시기에 많은 문물이 들어오고 변화를 겪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우리가 식민지시기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변화를 겪었고 수치상 경제학적으로 발전이 보이기 때문에 일본에 대해서 감사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소를 키우는 한 사람이 질 좋은 소고기를 얻기 위해 축사를 최신식으로 개조했다고 하자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소고기가 될 소는 소 주인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인가?
분명 조선은 식민지가 되었고 좌우합작운동과 납북협상은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분단국가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제시기 이전에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조선의 노력이나 일제시기에 일어났던 의병운동 및 독립운동이 역사적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단순히 일제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친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해서 친일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힘든 현실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그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만약 의병운동이나 독립운동이 없었다면 한국인들이 역사를 통해서 식민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좌우합작운동과 남북협상이 없었다면 해방 이후 분단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역사는 성공과 실패를 기준으로 결과만 놓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는 경과가 기준이 아니라 그 사건의 방향이 역사의 흐름에 순응했는가를 놓고 결정된다.
결과를 통한 평가가 수단과 목적의 중요성을 희석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이 한국사교과서 검정 통과 과정 및 내용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올바른 과정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통과만 된다는 생각으로 한국사교과서 검정이 이뤄지고 있다. 본래 정부 규정과 관행에 따르면 일선 학교의 교과서 채택은 새 학기 6개월 전에 완료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학사 교과서를 비호하기 위하여 기간을 연장함으로써 다른 과목 교사들은 새 교과서로 수업을 연구할 때, 한국사 교사들은 12월까지 채택 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또한 올해 전근대사 부분이 교과서에 추가되어 인원보강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한국사교과서의 검정심의위원이 올해에 줄어들었다. 그리하여 교과서를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전에는 2차 검정을 마친 뒤 최종 검정 통과 지전에 일선 교사들의 검증을 거쳤으나, 요즘은 출판하기 전에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저작권 위반이라는 논리에 밀려 사실상 밀려 사실상 공개적인 검증 절차 없이 교과서가 발간되고 있다.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여러 논란이 일어나자 교육부는 역사 교과서 8종 수정 권고안을 냈다. 그런데 교육부는 수정권고안을 최종 감수하는 전문가자문위원회 명단을 공개하지도 않고 다른 교과서들에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권고안을 발표하였다. 이번 한국사 교과서 논란을 살펴보면 올바른 토론을 위한 공개적인 검증도 부족하며 상대방의 입장을 자신만의 정치적인 잣대로 몰아세우며 공격하는 행태가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그리하여 자기주장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식의 교과서 검정 과정이 나타나고 있다.
생각과 관점은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를 수 있다. 그리하여 역사서술의 방식에도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그렇기에 역사 교과서 발행에서 만큼은 적법한 절차와 규칙 아래에서 다양한 의견을 듣고 받아들이면서 올바르게 수정해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서로간의 입장을 확인하면서 오류를 수정해 나가 좋은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얼마 전 큰 논란이 되었던 금성출판사 역사교과서에 대한 교육부의 지시는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정치나 이념을 목적으로 자기 입맛에 따라 교과서를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좋은 교과서가 탄생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