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호] 전국 곳곳에 세워지는 평화의 소녀상,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아

‘매뉴얼’의 부재로 인한 어려움, 시 당국·지역 상인들과도 마찰

2015-12-02     한건호 기자

“위안부 피해자들은 세월이 흘러 이제 할머니가 됐지만 마음속엔 여전히 그 때 꿈 많던 소녀가 앉아 있다는 느낌을 전하고자 했다.” 일본 대사관 앞 최초의 평화의 소녀상을 조각한 김운성(47), 김서경(46) 부부의 말이다. 김씨 부부는 1992년을 시작으로 지난 2011년 12월 14일 1000회를 맞이한 수요집회를 기념해 최초의 소녀상을 세웠다. 이 소녀상은 지난 과거에 대해 일본에게 반성 및 사과를 촉구함과 동시에 우리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며 일본 대사관 앞에서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반가운 소식은 소녀상이 전국적으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일부 시·도에서는 시민단체들이 나서 위안부 문제를 환기시킬 수 있는 소녀상을 건립하고 있다. 지난 8월 12일과 15일에는 각각 군산과 의정부에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진행됐고 오는 10월 3일에는 서산에서 제막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선 소녀상 건립을 앞두고 추진위원회와 시 당국·지역 상인들이 마찰을 빚으며 문제가 발생했다. 위치 선정부터 소녀상의 모습까지 소녀상 건립에 필요한 구성 요소에 있어 의견이 갈려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 청주시 소녀상, 위치 선정을 두고 논란 빚어

지난달 14일 평화의 소녀상이 청주시 상당구 중앙동에 위치한 청소년광장에 임시 전시됐다. 충북소재 100여개의 시민단체와 시민위원으로 구성된 ‘충북 평화의 소녀상·기림비 시민추진위원회’(이하 충북 위원회)는 지난 5월 27일 발족한 이후 시민들을 대상으로 약 5000만원을 모금해 이 소녀상을 만들었다. 충북 위원회는 자체적인 위치 선정 과정을 거친 후 청소년광장에 소녀상을 설치할 것을 청주시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청주시는 청소년 진흥법상 소녀상이 추모 성격을 지녔기에 청소년광장에 설치될 수 없다고 밝혔다. 더불어 일부 청소년 단체들도 소녀상 훼손 시 청소년이 범인이라는 오해가 있다며 반대했다. 소녀상이 청소년광장에 임시 전시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오는 10월 까지 다른 장소를 확정해 소녀상을 이전해야 했던 충북 추진위는 장소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움을 준건 바로 중앙동 주민자치위원회(이하 위원회)였다. 진창수 중앙동 자치 위원회 위원장은 “소녀상의 임시 설치 기간 중 훼손된 부분이 없었다”며 청소년 단체들의 우려를 일축하는 한편 “소녀상은 추모의 성격보다는 우리의 아픈 과거를 되돌아보고 공감하는 곳이 될 것이다”라며 청소년 광장 소녀상 건립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후 진행된 주민간담회에서 반대하던 청소년단체들도 청소년 광장에 소녀상을 그대로 두는 것에 찬성하면서 청주 소녀상은 그 자리를 지키게 됐다.

 

◇ 전국 다른 지역에 생기는 소녀상은?

창원에서는 2013년 9월 72개의 단체와 시민으로 구성된 ‘일본군 위안부 창원지역 추모비 건립 추진 위원회’(이하 창원 추진위)가 발족했다. 창원 추진위는 창원 시민들을 대상으로 모금활동을 펼쳤고 이후 부지 선정, 조형물 작가 선정 등의 과정을 거쳐 지난달 27일 소녀상 제막식을 열었다. 장소는 창원시 오동동 문화의 광장 입구로 창원 추진위 정혜숙 집행위원장은 “역사성과 대중성 그리고 교육성을 기준으로 하여 장소를 선정하였다”며 장소 선정의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창원의 경우에도 건립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무엇보다도 창원 추진위는 위치 선정에 있어 지역상인과의 마찰이 있었음에도 창원시가 의견을 조율해주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점에 있어 아쉬움을 표했다. 뿐만 아니라 위치 선정에 있어 시민들의 의견조사를 거친 최종 승인허가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상인들의 반대가 있다는 이유로 재검토를 지시하는 등 미숙한 행정 처리를 보여 문제가 됐다.

지난달 13일에는 천안에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 추진위가 발족했다. 34개의 지역 시민단체와 시민들로 구성된 ‘위안부 문제 해결과 일본의 재무장 반대, 한반도 평화실현을 위한 천안 평화의 소녀상 건립 시민추진위원회’(이하 천안 추진위)는 1만원 이상 모금한 시민에게 개인추진위원의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모금 활동을 진행한다. 발족한지 얼마 되지 않은 천안 추진위 측은 시 당국과의 관계보단 시민단체 연합의 확장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소녀상을 둘러싸고 단체마다 의견이 갈리다보니 시민단체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음을 호소했다.

 

◇ 소녀상 건립 매뉴얼 부재로 일부 추진위 어려움 호소

현재 전국 단위의 위안부 관련 단체가 존재하지만 소녀상을 담당하는 단체는 없다. 이로 인해 전국의 소녀상은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꾸려진 추진위원회나 기존의 지역 위안부 단체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세워진다. 따라서 조각상의 모양과 위치 선정에 있어서도 각지의 추진위는 개별적인 조건을 적용한다. 창원시의 경우 추진위 내에 ‘부지확보 추진 자문단’, 조형물의 의미와 작가 선정을 결정하는 ‘건립 위원회’를 따로 두어 체계적으로 소녀상 건립을 추진했지만 충북 추진위의 경우엔 이와 같은 자문단 및 세부기구가 없어 위치선정과 조형물 내용 및 모양 설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추진위의 구성적 측면에서도 매뉴얼 부재로 인한 아쉬움이 남는다. 추진위가 새로운 지역에서 생겨나는 경우 소녀상 건립 관련 매뉴얼의 부재로 주변 지역 선례를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충북 추진위 정지성 상임공동대표는 “충북 추진위의 경우엔 대전 소녀상 건립 추진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추진위 구성 시 소녀상의 내용과 모양을 정하는데 있어 자문을 구할 기구를 만들지 못해 기존의 소녀상과 동일한 모양으로 건립할 수밖에 없었다”며 소녀상 건립 매뉴얼 부재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하지만 일부 지역 추진위는 통합적인 매뉴얼의 필요 없다는 의견을 전했다. 창원 추진위 정혜숙 집행위원장은 “각지의 소녀상은 그 지역의 상황에 맞게 건립돼야한다”며 소녀상 건립에 관해 각 지역 추진위의 독자적 측면을 역설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전국 곳곳에서 소녀상을 건립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정지성 상임대표는 소녀상 건립이 늘어가는 상황에 대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소녀상을 건립하기 위해 힘쓰는 것은 굉장히 그 의미가 크다”며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그 기쁨을 나누는 한편 아직까지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아픔 역시 소녀상을 통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며 소감을 밝혔다. 정지성 상임대표는 한편으로 “전국 단위의 체계적인 소녀상 건립 단체나 매뉴얼이 존재한다면 새로이 소녀상을 건립하는 지역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점점 소녀상의 수가 증가하는 현재 상황에서 소녀상과 관련된 매뉴얼의 필요성을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