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호] 영혼에 휴식을 주는 화가

2015-11-04     박은송 기자

페르난도 보테로는 콜롬비아의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부풀려진 소재를 이용하여 특유의 유머감각과 남미의 정서를 표현하였다. 옛 거장들의 작품을 이용한 독특한 패러디 작품들과 정치적 권위주의와 현대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들이 유명하다.

그의 작품을 처음 본 대중들은 만화인 줄 알았을 수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미소를 지닌 모나리자를 뚱뚱하고 귀여운 소녀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의 작품에 대해 진지하지 않은 그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림이 진지한 것이어야만 하는 생각에 의문을 가져보자. 
만화의 한 장면이 캔버스에 옮겨진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만화와 회화를 구분하고 있다. 이처럼 선입견은 한여름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걷다가 들러붙은 껌처럼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떼어내려면 온도를 낮추어 굳어버리게 만들거나 시간이 지나 닳아 없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보테로의 그림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촌스러운 그림’으로 폄하되었다. 
그의 작품 배경은 고향 남미대륙으로 독재자, 탱고 댄서, 창녀, 아낙네 등이 등장한다. 소재로 삼은 인물이나 동물은 모두 실제보다 살찐 모습으로 그려지며, 작고 통통한 입과 옆으로 퍼진 눈으로 뚱뚱함이 더욱 강조된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 앞에서 웃음을 터뜨린다. 당대의 미적 기준에 부합하는 이상적인 몸매가 아닌, 마치 튜브에 바람이라도 불어넣은 듯 부풀려진 그림 속 인물들 앞에서 사람들은 무장 해제된다. 진지함을 벗어던지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걷어낸 그림 속 인물들은 곧장 관광객의 마음을 열어젖힌다. 그건 관람객이 그림의 의미를 찾기 위해 머리를 짜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심오한 철학이나 미학적 용어를 써야만 설명할 수 있는 그림이 아니라는 걸 대중들이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그가 그리는 풍만한 인물들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뚱뚱한 사람에 대해 애정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마른 사람을 선호하는 세상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보테로는 결코 자신은 뚱뚱한 사람을 그린 게 아니라고 말한다. 볼륨에 대한 애정, 사물에 비율을 달리했을 때 느껴지는 비현실적인 신비로움, 그리고 조형성 때문에 그렇게 그릴 뿐이라고 말이다. 그는 단지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미소 짓고, 일상의 긴장을 풀면서 편안해하기를 원한다. 겹쳐진 허리와 뱃살에도 불구하고 타이트하게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여인들, 무심한 듯, 때로는 멍청한 듯한 그들의 표정에서 우리는 언제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근육이 경직된 채 아름답거나 친절해 보이도록 스스로를 드러내는데 익숙한 자기 자신을 풀어 버린다. 우리는 그저 편안하게 즐기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