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호] 작품에 나타난 달리의 삶

2015-10-22     박은송 기자
▲ 아흐누보는 프랑스어로 새로운 미술이란 뜻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미술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입니다.

살바도르 달리는 20세기 미술에 큰 족적을 남긴 미술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커다란 명성을 얻었고, 그의 남달리 기이한 버릇들은 전설이 되었다. 그의 대표적이고 대중적 작품은 녹아 흘러내리는 시계가 걸쳐져 있는 ‘기억의 지속’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시계는 과거의 달리와 그의 억눌린 욕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의 가족사와 성적 욕망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계는 현실 세계의 견고한 모습과 달리 녹아내리는 형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작품을 통해 표현된 그의 은밀하고도 복잡한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04년 스페인 피게라스에서 태어난 달리는 14세 때부터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그러나 과격한 성품 때문에 1926년 퇴학당했다. 그는 보기 드문 조숙아로 일찍이 입체파나 형이상회화 등의 감화를 받으며 작품 활동을 하였다. 1925년경부터는 심기일전하여 대상의 정밀한 세부묘사로 향하고, 의식 속의 꿈이나 환상의 세계를 자세하게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1928년 달리는 파리로 가서 초현실주의 화가나 시인들과 교류하며 초현실주의 운동에 합류하게 된다. 이때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시인으로 활약한 폴 에뤼아르를 만난다. 후에 폴 에뤼아르의 부인인 갈라의 모습에 사랑을 느꼈고 마침내 1934년 갈라는 달리와 함께 부부의 연을 맺었다. 둘은 만난 지 수십 년 후 엘뤼아르가 사망하자, 교회에서 인정하는 부부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태어나기 9개월 전 죽은, 이름이 똑같았던 형의 인생을 살아야 했던 달리의 상처가 너무 깊었던 관계로 이들의 행복은 쉽지 않았다. 밤마다 죽은 형의 환영을 보는 달리의 이상증세는 멈추지 않았다. 그 상처를 아물게 해주기 위해 갈라는 큰 결심을 한다. 갈라는 달리가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그의 옆에서 감시했고, 심지어 달리가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 밥도 주지 않고 잠도 재우지 않으며 지독한 생활을 이어갔다. 갈라의 철통 감시 속에 하루 12시간 이상 그림을 그려야 했던 달리는 강압적인 상황에서 그린 그림들이 초현실주의 작품 '건축적인 밀레의 만종', '불이 붙은 기린' 등 명작을 쏟아내며 미술가로서 최고 절정기를 맞이하게 된다. 
합리적 사고에 좌우되기 쉬운 개념이나 이미지를 거부하고,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서 영감을 찾은 달리는 이미지에 대해 무의식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환각 상태로 유도했다. 그의 그림들은 모두 꿈속 세계를 묘사한 것이다. 그 속에서 모든 사물들은 황혼의 메마른 풍경을 배경으로,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변형된다. 
이후 달리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성장했지만 1982년 갈라의 죽음을 끝으로 그의 작품 활동을 이어가지 않게 된다. 달리는 "갈라가 사라진 이후 그 누구도 갈라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철저히 혼자다"라며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갈라는 자주 달리의 작품에 등장했으며 그의 작품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분명하다. 갈라는 달리라는 남자를 만나 그야말로 허공에 붕붕 떠다니는 천재를 지상의 천재로 만드는데 온 인생을 바쳤다. 갈라는 달리의 열쇠이자, 하늘이자, 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