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호] 대한민국은 물부족국가가 아니다

2015-07-04     서동석(환경교육 08)

  “물을 물 쓰듯 하지 못한다.”라는 구식 농담은 이제 식상을 넘어서 진부하기까지 할 정도이다. 생수를 사먹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물을 아끼는 것 역시 당연한 현대인의 행동강령처럼 되어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의 기저에는 1993년에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 : Population Action International)가 우리나라를 물부족국가군으로 분류했다는 사실이 작용하였다.
  PAI는 1인당 사용가능한 수자원량을 기준으로 세계 각국을 3단계로 분류하였다. 분류에 따르면 매년 1인당 가용수자원량이 1,000m3미만이면 물기근국가, 1,700m3미만이면 물부족국가, 1,700m3이상이면 물풍요국가에 해당한다. PAI분류에 따라 우리나라는 1993년 1인당 가용 수자원량이 1470m3로 물부족국가군에 속하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물부족국가군에 속했다는 사실은 석유는 없을지라도 수자원만큼은 풍부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환경교육은 물론이거니와 환경단체라는 것도 생소했던 당시 우리사회에서 물부족국가라는 돌멩이가 만든 사회적 파장은 매우 컸다. 따라서 이를 기폭제로하여 물과 관련된 각종 환경운동과 물 부족에 대한 대비책을 촉구하는 사회적 목소리들도 덩달아 커져왔다. 사람들은 양치질을 할 때 컵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세수 대야에 물을 받았으며, 빨랫감은 모아서 한 번에 세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는 여전히 물부족국가군에 속하고 있으며 PAI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5년에는 1인당 가용 수자원량이 1199m3로 더욱더 감소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황폐한 디스토피아인 것일까. 그러나 이러한 예측에는 많은 허점들이 있다. 먼저 우리나라의 강수량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1,200mm에서 1,300mm 사이에 위치한다. 세계 연평균 강수량이 900mm대 인 것을 감안한다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세계평균보다 300mm나 웃도는 우리나라가 물부족국가라면 이 지구상에 제대로 생존할 수 있는 국가가 있긴 한 것일까. 이것이 PAI의 연구의 첫 번째 맹점이다.
  PAI는 1인당 가용 수자원량을 산정할 때 강우유출량을 단순히 인구수로 나누어 산출하는 너무 단순한 1차원적인 방법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강수량은 세계평균을 웃돌지만 좁은 영토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여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1인당 가용 수자원량이 적게 도출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PAI의 연구결과대로 높은 인구밀도에 비해 적은 강수량으로 인해 1인당 가용 수자원량이 부족하다면, 우리는 늘 상수(上水)를 걱정하며 지내야 하지만 일부산간 도서지방을 제외하고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물 걱정을 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상수도 기술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좁은 영토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아서 세계적으로도 인구 밀도가 높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연 강수량의 70%가 여름에 집중되어 강수의 유출이 심한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수자원 확보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도 명백하다. 따라서 수자원 이용에 제한이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악조건을 높은 수준의 기술력으로 극복하여 실제로는 PAI의 연구보다 높은 1인당 가용 수자원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따라서 1차원적인 연구방법으로 산출한 PAI의 결과는 신뢰도가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1993년 당시는 지금처럼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PAI라는 단체가 우리나라가 물부족국가군에 속한다고 발표하였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부족국가군에만 초점을 맞추었지 PAI가 정확히 어느 정도의 신뢰도를 갖춘 단체인지 파악조차 힘들었다. 흔히 사람들은 이 연구결과가 공신력 있는 국제단체에 의한 발표라고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PAI는 국제연합(UN)과는 거리가 먼 미국의 한 사설연구소에 불과하다. 실제로 국제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아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물빈곤지수(WPI : Water Poverty Index)에 따르면 200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전체 147개국 가운데 43위, 29개 OECD국가 중 20위로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양호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과 관련된 많은 공익광고나 캠페인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물부족국가라는 살벌한 경고문구가 빠지지 않고 삽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소규모의 단체는 물론 꽤 큰 규모의, 공신력 있는 공익광고 단체에서도 쉽게 살펴볼 수 있다. 일부 단체는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도 있지만 일부 단체는 이러한 실상을 알면서도 자극적 단어를 쓰는 경우도 있다. 물론 PAI가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우리나라를 물부족국가군으로 분류한 것은 사실이기에 이는 큰 잘못도 아니고 죄도 아니다. PAI의 연구가 날조된 연구도 아니고 조작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가정과 결과도출에서 설득력이 떨어질 뿐이다.
  그러나 큰 잘못이 아니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경고나 위험 등을 통해 부정적 인식을 떠올리게 하는 강한 문구를 남용하는 것은 오히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환경교육의 패러다임도 변화하고 있는 추세이다. 과거에는 주로 검은 기름을 뒤집어 쓴 철새, 이물질로 가득한 물고기의 내장 등 환경오염과 관련된 이미지나 문구를 이용하여 환경교육에 활용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떠올리게 하는 방법을 통해서는 환경교육의 진정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에 점차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그 방향은 오염을 통한 경고가 아니라 환경감수성을 제고시키는 것이다.
  환경교육에서 환경오염의 위험성을 알리는 것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환경교육이 보다 지향하는 바는 환경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힘과 소양을 배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염교육을 통해 환경을 보전하는 것보다 환경감수성을 고취시켜 환경의 소중함을 스스로 일깨우게 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교육은 독자적 학문의 분야로도 이루어질 수 있지만 학교현장에서 다양한 학문과 융합되어 실시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학교 현장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환경파괴의 자극적 이미지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지금은 보다 슬기로운 지혜와 방법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