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호/시론] 정치적 담론에 대한 소고

2015-07-04     박상영(일반사회교육) 교수

  정치적 담론이 가지는 특징들 중 하나는 그것이 현실에 대한 서술적인 기능을 함과 동시에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의 행위를 강제하는 구성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즉 어떤 특정한 정치적 담론은 현실에 대한 서술과 묘사이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 그 현실에 대해 어떠한 행위를 촉구하는 일종의 정치적 행위가 되기도 한다. 간혹 특정 정치적 담론들이 강력하게 발산하는 힘의 원천은 아마도 전자의 기능 보다는 후자의 기능이 극대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 담론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정치적 함의 때문에 한국정치 전공자로서 최근 정치권과 시민사회내의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정치적 이슈들에 대한 정치적 언어와 담론이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한국의 정치적 담론은 근래 들어 여기저기에서 넘쳐나고 있다. 공중파, 신문, 종합편성채널, 소셜 네트워크, 그리고 좌우 성향의 각종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이슈들에 대한 정치적 담론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우선 이러한 정치적 담론들은 과거에 비해 폭발적으로 양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아마도 이는 과거 정치적 담론이 주로 생산되었던 채널들에 대한 제한이 없어지면서 빠르게 그 폭이 넓어지고 동시에 다양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적 담론의 이러한 양적 성장과 그 재생산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일면 긍정적인 현상이다. 무엇보다도 이를 통해 시들해져가던 한국 시민들의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이는 다시 최근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이라고 지적되는 ‘참여의 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담론의 폭발적 성장 이면에는 어두운 면도 도사리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현재 생산되고 재생산되어지는 정치적 담론들의 ‘질’과 관련이 있다. 최근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상당수의 정치적 담론들은 합리적 토론과 숙의를 촉진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보다는 상대 진영 혹은 자신의 정치적 적수에 대한 과도한 적대감과 선을 넘었다고 여겨질 정도의 악랄한 감정적 공격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감성적으로 과다하게 충전된 담론들은 듣는 이들에게는 매우 자극적이기 마련이어서 단기적으로는 여론의 많은 관심을 받게 되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일반 시민들의 정치인에 대한 혐오감과 정치권 전반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한다는 면에서 치명적이고 심지어는 자기 파괴적인 행위이다.
  대개의 경우 이러한 유형의 정치적 담론을 생산해내는 이들은 마치 정답을 미리 정해 놓은 채 모든 상황을 꿰어 맞추는 가는 방식의 의식적이고도 의도적인 추론을 하게 된다. 아놀드 킹은 이러한 추론 방식을 ‘motivated reasoning'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그는 이러한 추론 방식은 흔히 법정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투는 율사들의 추론 방식과도 유사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고화 단계에 있음을 부정할 이는 별로 없겠지만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도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판단은 한국의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담론의 수준과 직결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암울한 정치적 현실과 고귀한 이상의 괴리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진부하지만 역시 교육이 답일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의 적극적이고 내실 있는 시민교육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