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호] 따뜻한 고향 정취를 담은 노래

2015-07-04     한국교원대신문

  초등학교 시절, 시골 집 앞 들판에서 친구들과 함께 마거리트 꽃을 마구 따 서로 던지면서 짓궂게 장난치던 때가 있었다. 그로부터 45여 년이 흐를 때까지 그 당시의 일들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 얼마 전 학교의 뒷산을 산책하다 수많은 마거리트 꽃을 보고 고향의 아름답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기억 속에 되살아났다. 나에게 소중한 추억을 안겨준 아름다운 마거리트 꽃을 감상하면서 나도 모르게 홍난파의 <고향의 봄> 노래가 자연스럽게 나의 입에서 맴돌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도시 속 혼잡한 지하철을 탄 사람들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하면서 피곤에 지친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맑은 공기 속 아름다운 교정에서 고향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잊혀 진 고향의 기억들을 되살리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고 즐거운 추억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것이 바로 고향이라면, 언제나 우리들 마음 한구석에 고향을 간직하고 사는 한 정신적 풍요로움의 주인공이 되리라 믿는다. 정신적 풍요로움은 곧 정신적 여유를 뜻한다. 정신적 여유야말로 삶의 윤기를 더해주는 것인즉, 물질적 풍요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고향을 간직하는 일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마음의 고향을 음악 속에서 찾아낼 수가 있다. 물론 가사가 있는 노래의 경우 가사 내용을 통해 고향에 대한 구체적인 감흥을 느낄 수 있지만, 음악은 음악 그 자체 즉 악기의 음색이라든가, 선율 그리고 화성의 구성 등을 통해 다양한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고향의 내음이 담겨 있거나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음악은 낭만주의 가운데서도 국민주의 음악양식 속에서 발견된다. 이는 국민주의 음악이 그 주제를 오랫동안 인간의 생활 속에서 생성되어 온 토속적인 민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주의 음악운동에 선봉을 선 작곡가들로는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를 비롯하여 보헤미아의 스메타나와 드보르작, 노르웨이의 그리그,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등을 손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여관집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위대한 예술가의 반열에 오른 드보르작의 음악은 짙은 고향의 내음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1891년 뉴욕의 국민음악원장으로 초빙되어 미국으로 건너간 드보르작은 고향 보헤미아의 하늘을 그리워하며 눈물에 젖었다고 하거니와, 고향에 대한 애착이 남달리 강했던 드보르작은 조국 보헤미아의 선율, 그리고 흑인영가와 인디언의 민요리듬을 교묘히 결합하여 불후의 명작 <신세계 교향곡>을 후세에 남겼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드보르작의 음악이 우리에게 간절히 와 닿는 것은 국악음계와 같은 5음 음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인데, 예컨대 <신세계 교향곡> 2악장 라르고를 들어보면, 현악기군의 앙상블 위에 목관악기의 잉글리시 혼에 의해 탄주되는 겸허한 선율이 잊었던 고향을 절실히 느끼게 하며, 전편에 흐르는 토속적인 내음은 여유로운 웃음을 머금게 한다.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으로 불리어지는 <신세계 교향곡> 2악장을 담담하게 마주해 보자.      
  그런가 하면 브람스가 “저런 음악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먼저 작곡했을 것이다”고 말하며 칭찬을 하였던 드보르작의 <첼로협주곡>은 어떤가? 첼로협주곡들 가운데서 가장 사랑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2악장 처음 클라리넷의 고고한 울림과 이를 받아 서정적 화법을 구사해가는 첼로의 흐느낌은 어느덧 듣는 이들을 어린 시절로 끌고 가 개울가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티 없는 옛일들을 생각나게 해준다.
  스코틀랜드의 인상을 교향곡에 담은 막스 브루흐의 <스코티시 환상곡>은 감미로운 바이올린 소리와 푸근하고도 포용력 있는 화음감으로 언제 들어도 메마른 우리의 감정세계에 촉촉한 단비를 내리 듯 따스한 정을 느끼게 만든다. 곡의 이름은 <스코티시 환상곡>이지만 음악 속에 빠진지 3분만 지나도 이미 스코틀랜드와는 관계가 없는 자신의 고향, 그리고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는 추억 속에 있음을 느끼게 한다.
  누가 세상을 삭막하다고 했던가? 음악을 들어보라. 음악은 영원히 변치 않는 감동의 힘으로 새로운 삶의 근원이 되는 힘을 불어 넣어줄 것이다. 러시아 5인조 가운데 한 사람인 보로딘의 작품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를 들어보면, 7분여의 짧은 곳이지만 먼 지평선 너머에서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모습, 그리고 다시 초연히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후의 적막감이 우리들 삶의 한 면을 보여 주는 것 같다.
  한편, 엘가의 <사랑의 인사>와 북아일랜드의 민요 <유 레이즈 미 업>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선율로 따뜻한 고향의 정서에 심취하게 만든다. <사랑의 인사>는 영국의 유명한 작곡가인 엘가가 자신의 부인 캐롤라인 앨리스를 위하여 만든 곡이다. 엘가는 자신에게 항상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아내 ‘앨리스’에게 늘 고마움을 느꼈고, 그러한 생각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사랑의 인사’이다. 이들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은 현대에 사는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좋은 부부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따뜻한 봄과 포근한 고향, 그리고 좋은 친구와의 우애를 느끼며 아름답고 부드러운 선율의 <사랑의 인사>를 감상해 보자.
  북아일랜드의 민요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은 ‘시크릿 가든’ 멤버인 노르웨이 출신 ‘롤프 뢰블란’이 편곡하고, ‘브렌던 그레이엄’이 가사를 써서 만든 조용하고 안식처와 같은 편안한 노래이다. 이 곡은 1998년 이후 결성된 연주그룹 ‘웨스트라이프’에 의해 아시아와 유럽에서 큰 인기를 누렸는데, 가사의 일부를 번역하면, 제목은 ‘나를 일으키시네’이며, 가사 내용은 ‘내 마음이 우울하고 내 영혼 지쳐 쇠할 때, 괴로움 몰려와 내 마음이 괴로울 때, 나 아직 거기서 조용히 기다릴 거예요, 당신이 오셔서 나를 지켜주실 때까지’, 이러한 내용이다. 이 숙연한 음악은 자극적인 음향의 록음악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편안한 안식처와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따뜻한 고향의 안식처에 있는 편안한 마음으로 이 음악을 느껴 보자.
  이 밖에도 <고향의 봄>과 같이 고향에 대한 구체적인 가사가 있는 노래들이 있다. 우리 가곡 가운데에서도 김동진의 <가고파>, 채동선의 <고향>, 이수인의 <고향의 노래>, 김연준의 <청산에 살리라>, 이흥렬의 <고향 그리워> 등은 뿌듯한 고향의 내음을 느끼게 한다.
  고향은 양심이며, 마음의 고향 속에 깊이 배겨있는 어머니의 내음은 곧 사랑이다. 사랑을 향유하고 싶고 언제나 인간스러움 속에 마음을 두기를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아름다운 음악을 듣도록 하자. 그리고 음악 속에 담겨 있는 고향, 그리고 어머니의 따뜻한 내음을 끌어내어 호흡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