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호] 옳지 않은 다름

2015-06-25     김택 기자

모든 존재는 그 안팎으로 서로 다른 모습을 띤다. 자아는 그 경계를 인식하고 이에 이름을 붙여 ‘차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는 차이를 매개로 나 바깥의 것과 관계를 맺고어울리며 사랑을 나눈다. 차이가 있음으로써 수많은 삶과 삶의 교차들은 필연이었다.
그러한 낭만 이면에는 폭력이 빚어졌다. 때로 서로 다름은 자아의 정상성에 미루어 인정할 수 없는 하찮음, 야만, 혐오로 다가왔고 곧 완고한 신분의 벽을 두고 존귀한 이가 미천한 이를 착취하고 한편, 민족과 민족의 경계 아래 강한 민족이 약소민족을 억압하곤 했다. 이는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불과 백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떠돌이 집시는 걸핏하면 온갖 누명을 뒤집어 쓴 채 재산을 몰수당하고 유럽 정주민의 테두리에서 추방되다 끝내 다다른 지점이 나치의 학살이었다. 정상인과 다른 장애인, 백인과 다른 흑인, 남성과 다른 여성, 이성애자와 다른 성 소수자 등 사회적 타자의 처우가 크게 신장된 것 또한 멀지않은 과거로부터 만들어진 일이다. 이와 같이 배타적 구분 짓기가 가한 폭력은 차이의 무대 위에서 벌어진 이야기였다.
근.현대 이후로 사람들은 타자화된 주변인을 비로소 발견했다. 이들의 권리를 위한 운동이 본격화되는 한편, 차이를 가지는 존재와 존재 간의 권력 관계를 인식하고 모든 이들에동일한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흐름이 전개됐다. 이러한 사회적.지적 토대는 차이를 그자체로 인정하고 서로 다른 존재들의 다양함을 소중히 여기는 시대적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헌법상의 권리 아래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비교적 자유로이 표현하고 행동하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한다. 덕분에 젓가락질 똑바로 못한다고 밥상머리에서 지적받는 일도 꽤나 줄었다. 다양함이라는 서로 다른 존재들의 생태계는 거저 주어진 게 아니라 뭇사람들의 오랜 노력과 희생을 바쳐 겨우 만들어진 인류의 발명품이었다.
그러나 힘들여 쌓은 공덕이 있으면 그것에 붙어 기생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철학자폴 드만의 옹호자들이 드만의 친나치 경력을 은폐하는 데 끌어들인 논거는 다양성의 지적 토대를 마련했던 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 비롯됐다. 드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지배 아래 있는 한 신문에 친나치적인 글을 기고했는데 그의 옹호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적 문예이론에 따라 텍스트 해석의 무한한 가능성, 다양함을 운운하며 드만의 글을 친나치, 반유대주의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각 존재들의 타당함을 분별할 기준이 내재되어 있지 않은 다양성 개념 자체의 공백을 극한으로 밀어붙임으로써 가능했고 결국 드만은 별 다른 속죄 없이 1983년에 암으로 이승을 떠났다. 그가 남긴 삶의 궤적은 다양성이 진실들의 서로 다른 위상을 어떻게 흐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오늘날 한 온라인사이트는 근 몇 년 간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 주장하다 모든 광고게시가 중단됐다. 이에 대해 이들은 진보세력이 표현의 자유를 독점하고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며 ‘민중항쟁’을 펼치는 중이다. 아마 이 땅의 서로 다른 존재들을 위해 피 흘린 사람들이 이 꼴을 보려고 죽은 것은 아닐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