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호/시론] 교사의 사랑

2015-06-25     고영준(교육학) 교수

교사의 덕목으로서 ‘사랑’을 새삼 강조하는 것은 오늘날 진부한 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마음을 다잡고 ‘교사의 사랑’의 의미를 되짚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대체로 ‘사랑’이란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덕목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점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학생과 친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 ‘학생과 마음을 터놓고 소통하는 것’, 좀 더 근본적으로는 ‘학생을 존엄성을 가진 인격적 존재로 대우하는 것’은 그 밖의 인간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서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의 사랑, 곧 ‘인간애’ 또는 ‘인류애’가 과연 교사에게만 요구되는, 교사 특유의 덕목인가 하는 점에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인간애는 비단 교사만이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가져야 할 일반적인 덕목이라고 보아야 하며, 그런 만큼 ‘교사의 사랑’은 인간애 이상의 특별한 의미, 곧 ‘교사의 개념’으로부터 따라 나오는 특별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특별한 의미와 관련하여 두 위대한 현대 교육철학자의 견해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듀이(J. Dewey)와 피터즈(R. S. Peters)가 바로 그들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듀이는 교육이란 ‘경험의 계속적인 성장’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 말은 학생에 대한 교사의 사랑이 어떤 성격의 것인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듀이의 견해에서 ‘경험’이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가리킨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말은 학생을 성장의 주체로 보아야 함과 동시에, 학생의 성장을 사회 전체의 교육적 노력과 책임이 요구되는 사회적 과정으로 보아야 함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듀이의 견해에 따르면, 교사는 학생을 성장의 주체로서 보려는 태도와 더불어, 스스로를 학생의 성장을 이끌 책임이 있는 사회의 대리인으로서 보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피터즈는 ‘자유교육으로서의 지식교육’에 부합하는 교사의 사랑을 언급한다. 그가 보기에, 학생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친다는 일은 그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일과는 명백히 구분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상황에서 필요한 사랑에는 자식이나 형제가 아니라 바로 ‘학생’의 개념에 적합한 태도, 곧 학생을 ‘학생으로서’ 보려는 태도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자신이 마주하는 학생을 제 나름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차 자신과 동일하거나 더 나은 지적 수준에 도달해서 학문적 동료의 관계를 형성하게 될 인식의 주체로서 보려는 태도가 그것이다.
결국, 두 교육철학자 모두 교사의 사랑에는 학생을 인격적 존재로 대우하는 것 이상으로, 학생을 인식의 주체이자 성장의 주체로 대우하려는 태도가 들어있다고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교사의 사랑은 학생의 ‘즉흥적 흥미’를 무조건 뒤따르는 방임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학생을 제 나름의 의견과 신념을 가진 독립된 인식의 주체로 간주할 뿐만 아니라, 비록 당장에는 고난과 인내가 따를지라도 장차 그 의견과 신념을 딛고 스스로 더 나은 모습을 실현할 잠재성을 가진 성장의 주체로서 간주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학생의 말에 차분히 귀 기울이고 학생의 마음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이유, 때로는 학생에게 엄한 꾸지람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교사의 전문성과 어려움이 부각되고 또 우리가 학생을 사랑하는 교사에게 존경과 숭고함의 감정을 가지게 되는 이유도 바로 그 점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교권 위협’, ‘교권 붕괴’라는 사태에 직면하여 교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아마도 교사의 권위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법적 조치를 강구하는 것도 교육정책 결정자의 입장에서는 필요한 일이겠지만, 교사가 ‘교사로서’ 이러한 사태에 대응하는 근원적인 방안은 자기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는 것, 곧 ‘학생을 학생으로서 사랑하는 것’이라고 본다. “선한 자에게는 아무런 해악도 끼칠 수 없다”는 대화편 『변론』의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이 하늘 아래에 학생을 학생으로서 사랑하는 교사의 권위를 위협하고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교권의 밑바탕을 이루는 근본적인 믿음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