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호/시론] 일하는 도깨비를 아십니까?
“일만 하면 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 이런 문구를 내걸고 1958년 시골 마을에 작은 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그 후 55년 동안 이 학교의 학생과 선생님들은 농사를 짓고, 물건을 수리하고, 공부를 통해 서로의 생각 나누는 등 일과 공부를 하며 함께 살아왔습니다. 흔히 풀무학교로 불리지만 원래 이름은 풀무고등농업기술학교입니다. 학교의 분류로 보면 전문계 고등학교이고, 농업을 주로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이 학교 교육과정을 보면 농업만 열심히 가르치는 일반적인 농업계 고등학교와는 다릅니다. 인문학 과목이 웬만한 일반계 고등학교보다 많고, 각 분야의 명사 특강이 줄을 잇습니다. 아이들은 땀 흘려 씨를 뿌리고 풀을 뽑습니다. 직접 농사지은 채소를 급식으로 먹고 부산물로 퇴비를 만듭니다. 대학은 필요하면 가는 곳이라며 대학 입시에 목숨을 걸지도 않습니다. 이 학교는 왜 이런 교육을 고집할까요? 지난 50여 년 간 그들이 키워온 학생들은 정말 ‘사과를 따기만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꾸고 돌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일과 생각을 동시에 하는 정말 사람다운 사람을 기른다는 자부심 때문입니다.
교육을 잘 하고 있다는 잣대 중 하나가 OECD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학업 성취도 평가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입니다. 이 시험에서 부동의 1위를 점하는 나라, 우리나라 교육계가 주목하는 나라, 핀란드. 핀란드는 발트해 연안에 위치하며 인구는 약 524만 명, 우리나라 서울 인구만도 안 되는 작은 나라입니다. 러시아와 스웨덴이라는 열강에 둘러싸여 그 나라들에게 지배를 당하기도 하였으니 작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약하기까지 한 나라였습니다. 그랬던 나라가 달라졌지요. 달라진 데는 교육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교육 정책 중 핀란드 교육과정에는 눈에 띄는 과목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공예(craft)입니다. 공예는 생활 속에서 쓰이는 예술을 가르치는 교과로, 손으로 하는 여러 활동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1~4학년까지는 주당 4시간 이상, 5~9학년까지는 주당 7시간 이상을 최소시간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예를 통해 이 나라의 학생들은 공예와 관련된 손재주를 발달시키고, 실습에서 체험하는 기쁨과 만족감을 얻어 자부심을 갖게 되는데, 이것은 학생들이 어느 정도 일에 흥미를 가지고 집중할 수 있는지와 그 일에서 오는 만족감을 중요시한다는 의미와 함께 학생들이 만족감과 성
취감을 통해 바람직한 자아를 기르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이런 교육의 결과로 핀란드의 헬싱키는 2012년 세계 디자인 수도(World Design Capital)로 선정되었으며, 핀란드 공예는 아름다움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핀란드인의 삶 속으로 들어와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일상, 그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공예·디자인은 핀란드 공예의 고유한 특징으로 인정받으며, 세계를 주도하는 디자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지요.
작지만 강한 나라, 핀란드의 교육 중 우리는 언제나 읽기, 수학, 과학 능력만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노력하는 이른바 “국영수에 올인”하여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는데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공예”같은 과목이 없을까요? 교과의 명칭은 다르지만, 우리나라에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실과”가 편성되어 있습니다. 실과는 핀란드의 공예처럼 재료를 만져보고, 머리로 생각한 것을 손끝의 힘으로 현실에 구현해 내는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
만족감과 성취를 얻는 교과입니다. 공예는 단지 유용한 물건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만은 아닙니다. 공예를 통해 학생들은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관계 맺으며,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수용하는가를 배우게 됩니다. 이는 21세기가 추구하는 교육의 큰 흐름인 동시에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온전한 인간으로 자라나는데 꼭 필요한 능력입니다.
우리 학교가 위치한 충북 청주에서는 2년에 한 번씩 공예비엔날레가 열립니다. 올해에는 “익숙함 그리고 새로움”이라는 주제로 열립니다. 담배 공장을 예술과 문화, 삶이 만나는 공간으로 변모시킨 이 축제를 바라보며, 이 나라의 교육도 “공부만 하는 도깨비”를 양산하는 치우친 교육에서 벗어나, 공부와 일을 함께하는 전인을 기르는데 앞장서는 교육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