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호] "성교육 표준안"을 둘러싼 이야기들
동성애 관련 내용 포함과 성교육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
올해 2월 교육부는 ‘국가수준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하 성교육 표준안)을 발표했다. ▲금기시된 성 ▲범람하는 성 지식 ▲처방중심의 성교육 ▲부분적·산발적·반복적인 성교육 ▲성행동에 대한 책무성 상실 등의 문제가 있는 현실에서 체계적인 교육과정의 개발을 위해 지난 2013년부터 성교육 표준안 작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작업 과정부터 시행 후인 지금까지 표준안에 동성애에 관한 내용을 포함할 것인가를 두고 여러 단체에서 입장 차이를 보여 논란이 되고 있다. 또한 표준안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보건교과가 확립되지 않았고, 보건교사의 업무를 지원해줄 제도가 부실해 여전히 성교육의 실효성은 높아질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도 제기되고 있다.
◇ 외국의 성교육
미국은 현재 공립학교를 대상으로 성교육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안전한 성생활·피임·출산 등의 실질적 프로그램을 보강했다. 성적 관심을 자연스럽고 건강한 삶의 한 부분으로 보며 혼전 순결보다는 피임을 강조하는 교육을 한다.
독일은 1970년부터 성교육을 정규과정에 편입했으며, 1992년 성교육을 의무교육으로 강화했다. 성관계 시 체위를 포함한 거의 모든 주제를 지도하며 정확한 피임법을 교육한다. 수업은 학생들의 토론을 통해 쌍방향으로 진행되며 대부분의 수업은 남녀 학생들이 함께 받는다. 한편 산부인과와 비뇨기과 의사들이 직접 학교를 방문할 땐 남녀학생을 분리해 전문지식을 교육하기도 한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초등학생 이상의 보건교육에서 성교육을 의무화했지만 실제적인 성교육은 1992년부터 실시됐다. 그러나 그 후에도 학교교육이 청소년의 성문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았고, 이에 현재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월경과 사정·신체의 발육·성충동·이성교제·에이즈 예방법 등 다양하고 적극적인 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한편 일본의 중·고등학교가 법으로 규정한 보건수업은 연간 70시간 이상이며 교사의 일방적 수업이 아닌, 학생들의 토론과 조사로 이루어진다.
중국에서는 2002년 9월부터 법적으로 학교 성교육이 실시됐으나 전문 교재의 부재와 모호하고 실용적이지 않은 내용 탓에 학생들은 제대로 된 성 관념을 형성하지 못했다. 이후 2008년 중국에서는 성교육이 학교 정규교과로 의무화됐고, 2010년엔 대학교에 성교육 전공이 신설되고 관련 예산이 증가하는 등 정부차원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 우리나라 성교육과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
우리나라에선 1950년대 후반부터 성교육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고, ‘정결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미풍양속을 계승하는 내용의 성교육이 진행됐다. 급격히 인구가 증가한 1960년대에는 성교육이 강화됐으며 ‘정결교육’에서 ‘순결교육’으로 그 방향이 변화했다. 이어 경제수준 향상으로 청소년의 신체적 성숙시기가 빨라진 1970년대엔 ‘순결교육’에서 ‘성교육’으로 명칭과 방향이 바뀌었다. 1980년대엔 인간존중에 입각한 인간교육으로 성 지식, 성 의식, 성 윤리관을 확보하기 위한 교육을 했다. 성 범죄, 성폭력 등의 성문제가 확산된 1990년대에는 성범죄 예방에 중점을 두고 성교육을 위한 자료 개발과 보급을 시작했다. 이어 2000년대엔 학교 성교육 기본계획이 발표되며 체계적인 성교육이 강조됐고, 관련교과 및 재량활동을 통해 학년별 연간 10시간의 성교육 시간을 확보했다. 그리고 2010년대엔 학년별 연간 15시간으로 성교육 시간이 확대됐고, 인간발달·심리·관계·건강·사회문화 등 인간 삶의 전반을 다루는 융합형 교육과정으로 그 내용이 발전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의 성교육은 체계적으로 정착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부터 표준안 작업이 시작됐다. 표준안은 ▲초등학교 저학년·중학년·고학년과 ▲중학교 ▲고등학교의 학교 급별 5개 단계로 편성돼 있으며, 각 단계에는 ▲목표 ▲활동내용 ▲지도상의 유의점이 제시돼 있다. 표준안에 따르면 ▲초등학교에서는 남녀 생식기의 위생과 관리·사춘기 생리 현상과 건강관리·에이즈의 감염과 예방 ▲중학교에서는 생식기 건강과 태아·임신과 출산·신생아 관리·피임의 종류와 방법 ▲고등학교에서는 피임법의 선택·인공임신중절·생식기의 질병과 건강관리·신생아 돌보기·성 매개 감염병의 종류와 대처 방법·데이트 성폭력·예술과 외설·성과 관련된 법률 등을 배우게 된다. 수업 시수 역시 기존 성교육 시간이 확보가 안 됐을 경우, 타 교과에서 기존 성교육 시간의 학습 내용으로 수업을 진행하도록 해 15시간의 성교육이 시행되도록 체계성을 확보했다.
이처럼 법적으론 성교육의 내용과 시수 확보가 종전보다 튼튼해졌음에도 여전히 그 실효성 측면에선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학교 부설고등학교 이송우 체육교사는 “우리학교와 같이 보건교사가 없는 곳은 타 과목의 교사가 성교육을 담당하며, 수업 또한 재량활동 시간을 빼서 수업하기에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성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성교육의 현실적 한계를 밝혔다. 교육 표준안을 만드는 데 연구진으로 참여한 서울시 중동고등학교 이재영 보건교사는 이런 상황을 가리켜 “무기는 갖췄으나 전쟁터가 없는 상태”라고 말하며 “열의를 가진 성교육 교사와 교육자료, 법적인 시수 확보까지 갖췄으나 실질적으로 성교육을 포함한 보건교육이 특정 ‘교과’로 정해지지 않은 것이 한계”라고 전했다.
한편 표준안에는 ‘동성애에 대한 지도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항목이 있으며, 이와 관련해 동성애와 성적지향의 내용을 성교육 시간에 다루는 것을 두고 여러 단체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 동성애 내용에서 갈등 빚는 두 입장과 논란의 의의
작년 3월, 한국교회언론회는 성교육 표준안의 내용인 ‘결혼의 의미와 다양한 가족형태의 이해’에서 “‘다양한 가족형태’는 동성애, 동성결혼 등을 염두에 둔 것”이며 “이는 청소년들에게 동성애를 가르치려는 것과 같다”며 당시 표준안의 내용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이와 같은 보수 개신교를 비롯한 약 29개 단체들의 항의와 반발은 계속됐고, 결국 교육부가 합의점을 찾은 것이 지금의 표준안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여겨지는 성 규범을 채택해 이를 바탕으로 성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소수자 연대 등에선 “억지에 가까운 보수단체의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미 표준안은 시행되고 있지만 이에 반대하는 단체들의 목소리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달 13일 ▲서울시교육단체협의회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인권 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은 “성교육 표준안 도입을 중단하고 관련 내용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것이 그 예다. 이들 단체는 “제대로 된 성교육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이해를 넘어 타인의 성을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을 키워주는 것”이라 하며 “현재 성교육 표준안은 성소수자가 비정상적이라는 입장을 전제하고 있다”며 개탄했다. 이어 “제대로 된 성교육을 위해선 성 정체성과 성별에 대한 고민을 교과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교사회 김미숙 학술이사는 “교육부의 자료 중 동성애에 대한 지도 항목에는 ‘현재 우리나라는 성소수자가 인권 측면에서 존중·인정될 수 있으나, 동성애가 합법적이진 않기에 성윤리측면에선 불법으로 보아 성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 시기엔 동성애 언급을 피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고 전했다.
이와 같이 성교육 표준안이 논란이 되는 상황을 이재영 교사는 ‘반가운 일’이라 했다. “법은 계속 수정·보완되는 것이므로 우선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은 현실을 인식하고, 지금과 같이 쏟아져 나오는 얘기에 국민 모두가 귀 기울이며 성교육에 관해 제대로 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