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호] 님을 위한 행진곡

2015-05-12     편집장

  ‘어떤 이념이나 사상은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에 관심을 갖고 모든 문제를 대면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며 어떤 특정한 문제들을 외면한다면 그 이념이나 사상은 스스로 위선임을 자백하는 것이다.’ - 「오월의 사회과학(최정운)」

  올해도 5‧18 민중항쟁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이 거부당하고 있다. 유가족 및 관련 단체들은 정부가 주관하는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함과 동시에 이를 5‧18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해 줄 것을 7년째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 이들은 기념식에서의 제창과 기념곡 지정이 거부될 경우 기념식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반쪽’ 기념식이 될 여지가 존재하게 됐다.

  이와 같은 상황과 별개로 지난 2013년 국회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곡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정부는 이에 대한 5‧18관계자들의 요구에 이렇다할 입장을 명확히 내놓지 않고 있다.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정부가 주관하는 5‧18기념식이 처음으로 열렸던 1997년부터 2008년까지 기념식순에 공식적으로 포함됐으나 2009년부터 식순에서 제외되거나 합창단의 공연 등으로 대체됐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5‧18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소설가 황석영이 백기완의 장시 「묏비나리」의 일부를 차용해 가사를 짓고 김종률이 곡을 지어 완성한 노래로, 항쟁 중 계엄군에 의해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숨진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됐다. 이후 이를 연극으로 구현한 「넋풀이 굿(빛의 결혼식)」에서 두 영혼이 산 자에게 남기는 마지막 노래로 삽입되기도 했다.

  이는 5‧18항쟁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노래로 여겨져 이후 한국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잡았다. 이 곡이 처음 불리게 된 본목적과 당대 사회의 배경을 제쳐둔 채 무작정 ‘불온한’ 노래로 인식하는 것은 곡의 의의를 퇴색시키고 5‧18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희석시키는 것이다.

  이 노래는 광주항쟁 희생자의 비극적 죽음을 추모하고 그 용기를 기리기 위해 구성된 음악극에 포함된 이래 민중항쟁을 기억하기 위해 불려왔던 노래이며, 이 본래적 목적은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상관없이 항구적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님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을 비롯한 5‧18유족 및 관계자가 5‧18항쟁을 나타내는 가장 상징적인 노래로 이를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5‧18항쟁 기념곡 논란에 이어 올해 67년을 맞은 제주 4‧3희생자 추념식에서도 이를 상징하는 대표 노래가 공식행사에서 빠져 논란을 빚었다. 특정한 사안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외면한 채 명확한 입장 표명을 거부할수록 사회적 합의는 수렁으로 빠진다. 국회는 5‧18기념곡 지정 촉구 결의안까지 의결된 상태에서 본 사안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지 말아야 하며, 더 이상 ‘반쪽’ 기념식을 자행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