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호] 발달장애인법, 반갑지만 갈 길 멀다

특별법 지위 한계 인식하고 법 기반으로 시작해야

2015-05-11     하주현 기자

 얼마 전 KBS드라마 ‘굿닥터’가 종영했다. 대학병원 소아외과 전문의들의 노력과 사랑을 주제로 인기리에 방영된 이 드라마에서는 배우 주원이 발달장애인 의사 박시온 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만약 주원이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년후견제도의 혜택을 입었다면 그는 의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2015년 11월 21일을 시작으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이하 발달장애인법)이 효력을 발휘한다. 이 법을 통해서 발달장애인의 의사결정권 보호, 맞춤형 서비스 구현, 보호자의 삶의 질 향상과 같은 일이 기대되고 있으나 소득 보장 내용의 부재와 예산 지원 부족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 발달장애인의 정의와 현실

 발달장애는 과거 정신지체로 불리던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로 분류되며 학습발달장애․다운증후군․서번트증후군․레트증후군과 같은 장애와 증상을 총칭한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등록장애인은 약 250만 명,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은 약 19만 명으로 발달장애인은 전체 장애인의 13%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발달장애인은 성인이 돼서도 타인의 도움 없이 세수하기․밥 짓기․길 찾기 등의 일상생활을 하는 것조차 어려워 일생동안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지적장애인 유승주(사진 맨 왼쪽) 씨는 지난달 1일부터 복대1동주민센터에서 행정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남는 업무를 지원하며 매달 120만 원을 번다. 자폐성장애인 전성국(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씨와 구자훈(사진 맨 오른쪽) 씨는 2010년 7월부터 청주시 장애인 보호 작업장인 직지드림플러스에서 주로 비누, 수도꼭지부품, 종이 파일을 만든다. 공급에 따라 물량이 달라져 작업량도, 근무시간도 일정치 않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지만 한 달에 13만 원 정도를 번다. 유 씨와 같은 행정도우미는 한 직장에 한 명이기에 급여 수준이 높지만 전 씨와 구 씨가 일하는 장애인보호작업장은 다수가 근무하고 철저히 생산성을 기준으로 하기에 임금이 적고 사람마다 격차가 있다. 전 씨의 어머니인 민용순(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 회장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장애인의무고용제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일자리가 있더라도 신체적장애인이 기회가 많다. 제일 중요한 것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직업개발과 직무지도 매뉴얼이다. 직업교육과 훈련을 할 수 있는 기관이 있었으면 한다”며 안타까운 현실을 토로했다.

 발달장애인은 많은 부분에서 권리를 누리는 것은 고사하고 옹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주권자로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까지도 자연스레 박탈당한다. 만 20세가 넘어서 후견인이 있으면 법적으로 선거권과 공무담임권이 없기 때문이다. 후견인이 없어도 그 결과는 피차 같은데 시설에서 생활하는 발달장애인들은 대부분 후견인이 없음에도 지역사회와 철저히 분리돼 있고, 선거공보물 또한 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19만 명에 달하는 발달장애인들의 의견이 정치에 반영되지 않아 이들의 권리와 복지는 계속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 발달장애인 법

 발달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법률은 2000년대 중반부터 제기돼 왔으나 제정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발달장애인법 제정 운동은 2011년 말부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한국장애인부모회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 ▲한국장애인사랑협회 등 발달장애인 관련 4개 단체가 주도적으로 공동연대를 통해 뜻을 모으며 본격화됐다. 2012년 2월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이하 발제련)가 출범했고 발제련은 2013년 3월 발달장애인법 제정촉구 결의대회를 연 뒤 삭발식을 거행하며 98일간 농성을 했다. 결국 그 해 말 발달장애인법안이 국회에 제출됐고, 작년 4월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올해 11월 2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에 대해 한인선(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 회장은 “발달장애인법은 당사자와 그 부모들 그리고 시민들이 지난한 과정을 겪으며 만든 성과”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법은 이념상 “자기결정권”을 골자로 한다. 기존에는 발달장애인에게 결정능력이 없다고 봤기 때문에 보호자나 대리인이 대신하여 거주지, 거주 가족, 직업 등을 결정했으나 법안이 시행되면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자신과 관련된 사안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단, 의사결정 과정에서 보완·대체의사소통도구를 활용해 발달장애인의 관점에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예로, ‘수술’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의사가 수술하는 장면이 그려진 그림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편,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이경애, 한인선, 민용순 씨는 법안의 가장 큰 문제로 ‘소득보장에 대한 내용의 부재’를 꼽았다. 또 “아직 예산이 제대로 배정되지도 않았고, 형식적으로 11월에 시행된다 해도 실제로는 내년 예산이 어떻게 배분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민 회장은 “지금은 발달장애인의 관리와 보호의 많은 부분이 그 가족에게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가 공적인 지원체계를 갖춰 발달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융화되도록 조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법이 모든 걸 해결하진 않아··· 조직된 시민들의 감시가 필요하다”

 기존의 ‘장애인활동지원제도’에는 활동보조인지원서비스가 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을 맡게 되는 보조인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른 대상의 지원을 신청하거나 애초에 발달장애인의 보조를 피하는 일이 많다. 전국발달장애인부모연대 김치훈 정책연구실장은 “장애인을 위한 기존의 지원체계도 도움이 되지 않는 측면이 많은데 이런 점에서 발달장애인법은 ‘날카로운’ 무기는 아니나, ‘좋은’ 무기는 될 수 있다”며 “이 무기를 갖고 다른 법과 연동해 해결과제를 헤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례와 시행령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 차원에서 만들어지고 시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역 특성에 맞는 지원체계 개발이 매우 중요하다”며 지자체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경애(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 이사는 “특히 교사는 직업인이 아닌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며 “학교 현장에서 발달장애인 아이들을 마주칠 상황에 대비해 미리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만나고 이들의 특성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미래 교사들에게 부탁의 말을 전했다. 또 “정부는 예산의 논리를 들며 불가능을 말할 것이 아니라 이것이 ‘사람’의 문제임을 알고 세심한 조례와 시행령 제정 그리고 확실한 예산 편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등록장애인 250만 명, 그들의 가족까지 포함하면 1000만 명이다. 누구나 한 두 다리 건너면 장애인 가족구성원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김 실장은 이런 상황에서 “장애인과 그 가족구성원뿐만 아니라 당장 관계가 없어 보이는 시민들도 장애인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책을 요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