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호] 루소와 시에예스

2015-04-15     최수아 기자

  인간이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데 따르는 불편함은 그들로 하여금 사회 공동체의 구성을 촉진하게끔 하나 자연 상태에서 저마다 특수한 삶을 영위한 개인들의 결합은 쉬이 보편성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회 공동체의 의견(정책)이 모든 개인들의 의견을 함의해 운영되기 위해선 공동체 내에 속해 있는 구성원들의 결집과 합의가 선행돼야 할 것인데, 이러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에 있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다. 그중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Jean-Jacques Rousseau)와 시에예스(Emmanuel-Joseph Sieyès)는 각 시민들을 결집시켜 주는 공동 자아의 개념을 이끌어내 사회 구성의 과정과 당위성을 설명했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일반의지에 관한 이론을 통해 직접민주주의를 주창했고 이에 영향을 받은 시에예스는 1793년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대의적 일반의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기하며 전국신분회가 국민의 대의기관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신체와 모든 능력을 공동의 것으로 만들어 버려 전체 의사(la volonté générale)의 최고 감독하에 둔다. 그리고 우리는 각 성원을 전체와 불가분의 부분으로서 한몸으로 받아들인다”

  루소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보존’을 목적으로 사회를 이룰 필요성을 느낀다. 이러한 이기적인 인간은 사회라는 공동체의 제약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이점과 동시에 자연 상태에서 누렸던 개인의 자유를 보존하길 원하는데, 이를 위해 개인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로 각자의 권리를 만인에게 양도한다. 이 때, 개인은 만인에 포함된 존재이기 때문에 결국 그들 자신에게 권리를 양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로써 개인은 어떤 권리도 소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체의 의사를 결정할 권리를 갖게 되며 동등하게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한다.
  사회 상태에서는 ‘일반 의지’, ‘전체 의사’ 등으로 불리우는 공동 자아가 생성된다. 구성원들은  그들 전체의 의지를 묶어주는 보편적인 이익으로 결집되며 이러한 사회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도덕적인 존재로 변화해야 하는 필요성을 지닌다. 자연 상태의 인간이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도모하는 존재였다면, 사회 상태의 인간은 전체를 위해 판단을 내리는 존재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변화한 인간은 자발적인 도덕적 판단으로 공동 자아를 위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존재이며 루소는 이에 직접민주정을 구상했다. 루소는 모두가 동등하게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보편성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에 이전에 널리 용인됐던 신분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어떠한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이에 어떠한 특권도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을 낳았다. 루소의 사상은 이후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사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다수의 의견 속에서만 공동의 의지(volonté commune)를 확인해야 하며,” “프랑스에서 제3신분의 대표는 진정 국민의 의지를 대표한다. 그들은 국민 전체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다”

  시에예스는 파리의 신학교에서 공부할 당시 루소 등 계몽사상가들의 저서를 탐독하며 성장했다. 그는 후에 국민의회의 중심인물로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이론가로서 프랑스혁명을 지도했는데, 1789년 프랑스에서 명사회를 소집할 당시 출간한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는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폭넓게 읽혔다. ‘제3신분’이란 당시 프랑스의 평민 계급을 지칭하는 말로 제1신분인 종교인, 제2신분인 귀족과 구분됐다. 시에예스는 제3신분도 특권층과 마찬가지로 고유의 대표를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1‧2신분과 동일한 수의 대표가 개인별로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프랑스 신분회에서는 각 신분별로 한 표의 의사만을 표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제3신분은 전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서도 3분의 1의 의사밖에는 개진할 수 없었다.
  시에예스에 따르면,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하나로 뭉치게 된 국민들은 연합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통의지를 발현한다. 개개인의 의지를 모두 통일한 공동의지는 공권력의 근원이 된다. 이후 연합한 사람들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공동의지의 권력 중 일부를 떼어 특정인에게 맡긴다. 이는 대리정부의 형태로 나타나나, 이는 말 그대로 대리인일 뿐 공동체는 여전히 자기 의지의 권리를 잃지 않는다. 이 시기부터 작용하는 공동의지는 실제가 아닌 대의적인 존재이다. 대의적인 공동의지를 수합하는 대표들은 ‘실제 공동의지’를 위임받는 것일 뿐이다. 시에예스는 전국신분회가 이러한 대의기관의 역할을 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국민들의 의지가 공동의지 속에 포함돼 있는 상황 속에서 갈등이 일어난다면 국민이 그 자신의 권리로 하여금 헌법을 제정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시에예스의 주장이다. 이에 덧붙여 그는 정부가 헌법으로 구성될 때에만 실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며 동시에 국민의 의지자체는 합법성의 원천이기 때문에 언제나 합법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1‧2신분의 의회 20만 명은 자신들의 특권만을 위해 회의하기 때문에 제3신분의 2,500만 명이야말로 진정으로 국민의 이익을 위하는 대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루소와 시에예스 두 사상가는 자연 상태에서 사회 상태로 입성하게 되는 계기와 과정을 상세히 밝히면서, 공동 자아 내부에 위치한 개인이 할 수 있거나 해야 하는 역할을 정리했다. 이들은 각각 프랑스혁명 사상의 본류를 형성하고 프랑스혁명의 이론적인 부분을 지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