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호] 심리학의 태동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월까지 경북대학교 철학과 측에서 준비한 인문치료 특별기획 연속 강좌를 통해 얻게 된 것들을 나름대로 정리해 3차례에 걸쳐 게재할 것이다(여러 조건상 모든 이야기를 다룰 수 없어 청람광장의 ‘아침햇살을 기다리며’ 게시판을 함께 이용하여 ‘의지심리학’이라는 글쓴이명으로 이번 연재글의 계획서를 이미 올렸고, 앞으로도 보충자료 성격의 글들을 올릴 것이다). 이번 연재글들의 목표는 처음부터 명확하다. 그것은 ‘자유로운 인간’상의 구축이다. 물론 여기서 자유라는 단어는 단순히 수사학적인 용어가 아니며 그 의미는 차차 드러날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탄생과 그 의미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에서 인간의 정신세계의 지형학적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20세기의 포문을 연지 백여년이 지났다. 그는 인간의 심리적 경험의 장(場)을 의식적 접근 가능성을 기준으로 세가지 수준으로 나눈다. 1.의식 수준―항상 자각하고 있는 지각, 사고, 정서 경험을 포함한다. 그러나 의식의 영역은 정신지형에 있어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2.전의식 수준―평소에 의식하진 못하지만 약간의 노력만 기울이면 쉽게 의식으로 떠올릴 수 있는 기억과 경험의 장을 의미한다. 3.무의식 수준―자각하려는 의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의식의 수면으로 떠오르지 않는 심리적인 경험의 장을 뜻한다. 특히 ‘무의식’의 영역은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의 전(全)영역의 윤곽을 그려낸 핵심으로 위치해 있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그가 그려내고 있는 무의식이란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온갖 경험과 기억의 저장소이면서 ‘의식수준의 나’를 뒤에서 조종하는 무의식은 인간의 정신문제의 근원이면서 또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장소다. 본인의 환자들의 신경증을 치료하는 과정과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된 정신분석학은 정신적 고통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과거 자신의 상처들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여긴다. 다르게 표현해보자. 삶에서 겪었던 고통과 환경들은 개인에게 무의식 영역에서 상흔 혹은 자취들을 남긴다. 나는 어떤 고통을 겪거나 행동을 취한다. 그러나 왜그런지 알 수 없다. 단지 나의 무의식들이 바로 ‘그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분석의 목표는 ‘무의식의 의식화’다. 의식화된 무의식을 통해 문제들이 발견되고 비로소 치료가 가능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기에. ‘무의식’과 ‘의식’이라는 두 항 사이에서 프로이트 자신조차도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줄타기를 멈추지 않았으며, 이 줄타기는 앞으로도 그의 사후 수많은 심리학들이 무의식과 의식 사이에서 강조점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다양한 노선을 취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그는 긍정될 뿐만 아니라 부정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후의 모든 심리학의 분파들은 ‘프로이트에 대해’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에 따라 가는 길이 다양해진다. 바로 여기에 프로이트의 위대함이 있다. 어찌되었든 간에 도무지 그를 경유하지 않고서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탐구가 시작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무의식과 의식이라는 영역 사이에 위치시킴으로써 인간 자신을 이해가능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러나 정확히 그 지점으로부터 우리는 또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무의식은 생각만큼 무의식적이지 않고, 의식은 생각만큼 의식적이지 않다는 문제 말이다.
◎정신분석학을 반대한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라는 개념의 근간이 되는 것은 성욕 충동(sex drive)이다. 그것에 제어당하느냐 통제하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하고 혹은 굴복당해 신경병, 정신병 등의 질환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 성욕 충동의 내용으로, 인간의 가장 생물학적(그렇기 때문에 가장 근본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인 근거를 바탕으로 인간은 형성된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프로이트는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으면서도 그의 자식들은 계속해서 그를 부정하려는 결과를 낳게 된다(그 자신이 창안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개념은 기묘하게 그리고 매우 적절하게 이 상황에 적용된다).
앞서 나는 프로이트 이후의 심리학자들도 ‘무의식’과 ‘의식’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끊임없이 위치를 달리할 뿐이라는 말을 했다. 먼저 프로이트의 직계 제자라고 할 수 있었던 이들이 어떠한 이유에서 프로이트와 다른 입장에 서있는지 살펴보자.
프로이트가 자신의 뒤를 이을 ‘황태자’라고까지 말했던 구스타프 융(Karl Gustav Jung)은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무의식이라는 영역을 인정한다. 또한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과정이 인간의 성숙에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도 똑같다. 하지만 무의식이 프로이트에게 있어서는 통제되고 선택적으로 수용되며 ‘자아Ego’의 주도하에 의식적으로 관리되는 것이라면―다시 말해 성욕에 의해 추동되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통제되어야할 대상이었다면 융의 무의식은 개인의 삶에 방향을 제시해주는 지혜로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융은 무의식이 전체성과 통일성을 이루며 진정한 자기를 발현해가는 개성화 과정을 중시했다. 또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정신문제를 공격하고 치료해야할 대상으로 본 반면 융은 심리적인 것을 그 자체로 인정했으며 따라서 인간의 마음을 환원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반대했다(이는 앞으로 언급할 심리학자들에게도 사실상 해당되는 내용이다).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역시 프로이트의 직계 제자였으나 프로이트가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성욕을 중시하는 것에 반대해 인간 개인의 의지와 사회적 요인들을 강조했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의해 결정당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향해 자기를 적극적으로 내던진다. 이를 통해 자신이 처한 불리한 상황,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을 극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무의식보다 의식을 중요시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신경증 환자란 자신의 과거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창조하고 있다.”라는 그의 말은 무의식 속에 사장되어가는 인간을 구출하려는 노력을 집약한 말에 다름 아니다. 이는 훗날 실존주의 심리학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오토 랑크(Otto Rank)는 ‘의지치료’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심리학을 정식화했다. 랑크 역시 프로이트의 수제자였으나 의견 차이로 인해 정신분석학과 다른 입장에 위치해 창안한 의지치료는 ‘그렇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무기를 들고 ‘창조적 의지’를 실현하려는 전투를 벌인다. 과거는 여전히 우리의 뒤에 있다. 그러나 단지 그것뿐이다. 명확한 의지와 욕구를 가지고 랑크는 “의식화됨으로써 치유된다Heilung durch Bewuβtwerdung.”는 프로이트의 개념을 인간 자신의 의지와 창조력을 가지고 삶의 조형에 응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사상으로 확장한다.
융, 아들러, 랑크 이들은 모두 프로이트의 제자였다는 공통점과 성욕 중심의 무의식에 반대해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보려는 시각을 제공하려 했기 때문에 프로이트와 다른 길을 나아갔다는 또 다른 공동의 지반 위에 서있다. 이들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프로이트 이후 심리학영역의 강조점은 과거에서부터 이제 과거와 미래 ‘사이’로 옮겨지게 된다. 인간은 무의식의 요소로 환원될 수 없다. 인간은 환원될 수 없는 어떤 부분이 있다. 그것은 ‘자유’다. 이를 구체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서 우리는 ‘실존주의’를 거쳐가야 한다. 범성욕주의와 범결정론주의라는 이름으로 대담히 정신분석학을 이름짓고 거기에 맞서는 이들의 생생한 투쟁 속에서 말이다(‘제2부. 실존주의의 심리학’).
(‘◎정신병과 신경병에 대한 논의’는 지면의 제한상 추후에 아침햇살 게시판에서 보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