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호/시론] 자율형 사립고 사태를 지켜보며
발행: 2014. 11. 17.
지난 11월 1일 서울시 교육청은 자율형 사립고(이하 '자사고'으로 줄이기도 함) 6개를 지정 취소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교육부는 6개교에 대한 지정취소 처분을 취소하고 그 결과를 17일까지 보고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사건을 두고 한 쪽에서는 조희연 교육감이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을 바로 잡는 바람직한 행위라고 평가하는 반면, 다른 한 쪽에서는 이로 인한 현장의 혼란을 우려하며 질타하고 있습니다.
자율형 사립고는 초·중등교육법(이하 '법률'으로 줄이기도 함) 제61조에 근거하여 지난 2010년부터 교육감의 지정에 따라 학교 또는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고등학교를 말합니다. 자사고는 법률 제61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하 '시행령'으로 줄이기도 함) 제91조의3에 따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근거한 교직원 인건비 및 학교·교육과정운영비를 지급받지 않고,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법인전입금기준과 교육과정운영기준을 충족하여야 합니다. 2014년 현재 전국에는 49개교가 교육감의 지정을 받아 자사고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자사고는 일반 사립학교보다 많은 책임을 지우는 대신 학교 운영에 있어 자율권을 부여하여 특색있는 다양한 학교가 운영되도록 하여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넓히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합니다. 그럼에도 자율권이 남용되어 국가의 교육정책을 잠식할 정도에 이르면 안됩니다. 이러한 도입 목적의 달성과 그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국가는 일정한 요건을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규제를 하도록 설계를 하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지정취소'도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입니다.
현행 시행령 제91조의3 제4항은 교육감이 자사고가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적 방법으로 회계를 집행한 경우(제1호), 부정한 방법으로 학생을 선발한 경우(제2호), 교육과정을 부당하게 운영하는 등 지정 목적을 위반한 중대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제3호), 지정 목적 달성이 불가능한 사유의 발생 등으로 인하여 학교의 신청이 있는 경우(제4호), 교육감이 5년 마다 시·도 교육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학교 운영 성과 등을 평가하여 지정 목적의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제5호) 중 하나에 해당하면 자율형 사립고의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감이 자율형 사립고의 지정을 취소하는 경우에는 미리 교육부장관과 협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제91조의3 제5항).
이 사건은 시행령 제91조의3 제4항 제5호에 근거하여 서울시 교육감이 5년 마다 시·도 교육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학교 운영 성과 등을 평가하여 지정 목적의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하는 6개교의 지정을 취소한 것입니다. 당장 언론에 알려진 이와 같은 사실만 놓고 보면 이러한 지정 취소에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있습니다. 서울시 교육청은 이미 지난 2014년 4~5월에 자사고 운영 성과 평가단 구성을 포함한 평가계획을 수립하여 자사고에 통보하고, 5~6월에 학교 운영성과보고서를 제출받았으며 학교 구성원 만족도 조사와 현장 평가를 완료하습니다. 조희연 교육감이 부임하기 이전에 평가기준을 수립하여 평가대상자에게 통보하고, 이에 근거하여 평가를 마친 상태였고, 단지 그에 대한 최종 결정과 통보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평가지표를 추가하여 재평가한 것은 절차적 하자가 있는 행위입니다. 평가대상자인 자사고에 평가기준을 제시하고 이에 근거하여 이미 평가를 마쳤다면 그에 따라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지요. 그것이 우리 헌법상 법치주의원리에서 도출되는 법치행정의 원리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럴 때 국민의 법적 안정성은 존중되어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일부 자사고가 부정한 방법으로 회계를 집행하고, 교육과정을 부당하게 운영하였다면 평가와 무관하게 제91조의3 제4항 제1호부터 제4호까지에 근거한 지정 취소를 하면 됩니다.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재평가를 통한 지정 취소가 아니고 말입니다.
만약 우리 학교에서 구임 총장님이 계실 때 장학생 선발기준을 발표하고 이에 따라 장학생 지원을 받아 내부적으로 장학생 선발을 모두 마쳤는데, 신임 총장님이 부임하셔서 평가가 잘못 되었다고 판단하며 평가지표를 추가하고 재평가를 실시하여 기존에 내부적으로 선발된 장학생 중 일부를 떨어뜨린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겠습니까?
한편,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제91조의3 제5항에 따라 이와 같은 지정 취소를 위하여 교육부장관과 협의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언론에 따르면 교육부장관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것은 무슨 영문일까요?
교육부는 이와 같은 사태를 예견하여 사전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지정 협의에 관한 훈령'이라는 법령을 제정하여 교육부장관이 협의 후 동의, 부동의, 조건부동의라는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로 의견을 결정하여 교육감에게 통보하고, 교육감은 이 의견에 구속되도록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초·중등교육법은 사립학교의 설립에 대한 인가권과 운영에 대한 지도·감독권을 교육감에게 부여하고 있으며(제4조, 제6조), 이에 따라 시행령에서는 자사고의 지정, 지정 취소 등의 권한을 교육감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방의 사무는 원칙적으로 지방이 결정하여 처리한다는 지방자치법의 취지에도 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협의시 교육부장관이 부동의한 경우 지정 취소할 수 없다는 내용을 교육부 훈령이라는 '행정규칙'이라는 법형식으로 규정한 것은 위입법의 한계를 벗어난 것입니다(형식적 위법). 그리고 ‘협의’는 ‘합의’와 구별되는 개념이므로 교육감이 교육부장관의 부동의 의견에 반드시 구속되어야 한다는 훈령 제11조의2 제2항은 시행령 제91조의3 제1항을 벗어난 것입니다(내용적 위법). 따라서 교육감은 이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교육부도 여러 루트를 통하여 이와 같은 문제점을 안 것이지요. 그래서 동의를 할 수도 없고, 훈령에 따라 부동의를 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협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현 상황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행정은 법에 충실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법치행정입니다. 국가는 개인과 다릅니다. 개인은 사적 자치의 원리에 따라 의사를 결정하고 행동하면 되지만, 국가기관은 법에 따라 의사를 결정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자기 조직의 수반인 대통령이 제정한 명령에 근거하여 협의를 요청하고 있는데, 이를 거부하면 어쩌자는 것입니까?
이번 자율형 사립고 사태에서 서울시 교육청과 교육부는 각각 다른 측면에서 미숙함을 보이고 있지만, 공통점도 있습니다. 어떠한 행위를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선택한 수단과 절차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이 우리 공동체의 약속인 헌법의 기본원리인 법치주의 원리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입니다. 현대 입헌민주국가에서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옳으니 이를 위하여 선택한 수단과 절차가 잘못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한, 그 목적을 달성하기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교육행정 현장에서 법이 중시되어야 하고, 법에 충실한 행정을 구현하여야 합니다. 교육부와 서울시 교육청 양 측 모두의 변화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