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호] 매번 같은 영상, 진부한 내용 … 외면받는 학교 성교육

성교육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장 열려야

2015-02-02     박민지 기자

발행 : 2013. 11. 11

“고등학교 3년 내내 똑같은 성교육 영상인데, 심지어 언제 제작된 것인지 90년대 복장을 한 학생들이 등장해요. 우리가 애도 아니고 언제까지 ‘만지지 마세요. 제 몸은 소중해요’를 배울 수는 없잖아요”
경기도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의견이다. 이 학생 혼자만의 의견이 아닐 것이다. 학교에서 받았던 성교육을 기억해 보면 항상 보여주는 오래된 영상, 도움 되지 않는 진부한 내용이 떠오른다. 지금까지의 형식적인 성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현실에 맞는 성교육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볼 때가 됐다. 쉬쉬하며 가르쳐주지 않기에는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알아야 할 것도 많기 때문이다. 

◇ 성교육 도움 정도 ‘그저 그렇다’
지난 5월 여성가족부에서 청소년(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19세 미만의 학생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2년도 청소년유해환경접촉종합실태조사보고서’(이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성적인 접촉 또는 성관계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전체 조사 대상자의 15.3%를 기록했다. 비교 집단으로 함께 조사된 위기청소년(가출·범죄·비행청소년)은 61.6%가 성적인 접촉 또는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밝혀 학생청소년에 비해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어 성적인 접촉 또는 성관계의 연간 빈도를 묻는 문항에 5회 이상이라고 답한 학생청소년이 41.7%, 위기청소년이 36.2%로 빈도에 있어서는 두 집단이 유사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이들 모두 성교육을 받은 기관으로 학교를 가장 많이 선정했다.(학생청소년 69.7%, 위기청소년 58.1%) 그러나 성교육의 도움 정도에 대해 묻는 문항에는 ‘그저 그렇다’가 49%, ‘도움이 되지 않았다’가 17.8%로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되는 성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 드러났다.

◇ 학교 성교육의 문제점
청소년기는 사춘기, 즉 2차 성징이 진행되는 시기로 성에 대한 경험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올바른 성의식을 배워야 하는 시기다. 청소년들의 건전한 생활과 성인이 된 후 경험하게 될 성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기 위해 성교육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학생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학교에서의 성교육이 그 실효성을 지적당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교육사업팀 이목소희 팀장은 “교육청에서 15시간의 성교육을 실시하라는 지침을 발표했지만, 가정·체육·생물 교과시간에 배우는 성에 대한 내용을 그 시간에 포함시키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문제점을 언급했다.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성교육의 부족한 점을 묻는 문항에 ‘교육·강의 방식이 재미없었다’는 의견이 31.3%로 가장 높았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이 재미없다고 느끼는 이유에 대해 이목소희 팀장은 “공교육에서 실시되는 성교육에 배분되는 예산이 매우 적다. 그렇기 때문에 보건교사가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준비하지 못해 매번 같은 성교육 영상만 보여주니 학생들이 흥미를 잃는다. 외부업체에 의탁하려 해도 역시 예산상의 문제로 어렵고, 의탁한다 해도 예산을 아끼기 위해 많은 학생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진행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집중하지 어렵다”고 말했다
성교육을 위한 예산과 노력이 부족한 것에는 성교육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부정적 시선도 원인으로 작용한다. 한 예로 학교에서 콘돔 사용법과 같은 적극적인 피임 방법을 가르치면 학생들이 호기심에 시도해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해 이목소희 팀장은 “성교육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선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의견이다. 학생들에게 직접 질문해보면, 실제로 우려하는 행동을 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학생 스스로가 건강을 지키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 올바른 가치관 정립이 우선돼야
성교육에서 방법론적인 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가치관 정립이다. 예를 들어 남녀관계, 동성애 혹은 낙태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올바른 관점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줘야 한다. 또한 학년별로 성교육의 내용에 차이를 둬 각 연령의 발달단계에 맞는 내용을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학교에서는 성교육에 시간과 예산을 투자해야 하므로 교육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이목소희 팀장은 “사회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성교육의 중요성이 먼저 논의될 필요가 있다. 성교육이 어떤 내용을 다루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의 장이 열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고 언급했다.

◇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성교육
1983년에 설립된 아하청소년문화센터는 YMCA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 성교육·성상담 전문기관이다. 센터에서는 ▲어린이 성(性)장 놀이터 ▲성교육 인형극 ▲부모와 함께하는 사춘기로의 여행 ▲섹슈얼리티 지도 그리기 ▲저소득·소외지역을 위한 아하해피버스 등의 사업을 진행한다. 이목소희 팀장은 “우리는 센터내부교육에 치중하기 때문에 직접 센터에 방문한다면 많은 것을 체험하고 유익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 특화시설이기 때문에 특히 청소년 방문객들이 많이 와줬으면 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