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호] 학교의 선행교육 규제하는 공교육정상화법 시행
지식교육만으로 공교육의 정상화를 판단하지 말아야
지난 9월 12일 교육부의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하 공교육정상화법)>이 시행됐다. 이 법안은 공교육을 담당하는 각 급 학교의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목적으로 해, 교육관련기관의 선행교육(학교 등에서 학습자에게 교육과정에 앞서는 교육을 제공함) 및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행위를 규제하게 된다.
공교육정상화법이 시행된 지 2달 밖에 되지 않아 법안의 본격적인 효과가 나타나기에는 아직 이른 때이다. 그러나 교육계의 여러 단체들은 법안의 실효성 등을 문제삼으며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 공교육정상화법이란
올해 3월 11일 교육부는 공교육정상화법을 제정했으며, 그 시행령이 9월 공교육정상화법과 함께 공포됐다.
공포된 공교육정상화법은 선행교육 및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학교의 입학전형에 있어 해당 학교의 입학 단계 이전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나 실시하는 것을 금지한다. 우선 각 급 학교에서 시험과 각종 교내 대회에서 학생이 배운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해 평가하는 것이 금지된다. 또한 입학예정자에 대한 선행교육과 반배치고사에서 앞으로 배울 교육과정의 내용으로 문제를 출제하는 것 역시 금지된다. 더불어 학원 및 개인과외 등 사교육업체는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광고를 할 수 없게 된다.
학교 입학전형의 경우, 특성화중학교와 특수목적고등학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등 입학 선발고사가 있는 학교들은 입학전형 실시 이후 그 입학전형이 선행학습을 유발하는지에 대한 영향 평가를 실시해 그 결과를 관할 교육감에게 제출하게 된다. 대학의 경우에도 대학별 고사에서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할 수 없게 되며, 대학 입학전형평가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그 내용이 선행학습을 유발하는지에 대한 영향평가를 실시한다. 대학은 그 결과를 일반에 공개하고 다음 해 입학전형에 반영해야 한다.
학교가 이러한 내용을 어겼을 때에는 위의 [표]와 같은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교육부장관 및 교육감은 위반행위를 적발한 경우 먼저 시정․변경 명령을 내리고, 이후 정당한 사유 없이 지정된 기간에 이를 따르지 않았을 시 행정처분을 가한다. 2차 불이행의 행정처분은 위반행위가 3년 이내 3회 이상인 경우 가해진다.
다만 이와 같은 내용의 공교육정상화법은 <영재교육 진흥법>에 따른 영재교육과 <초․충등교육법>에 따른 조기진급·졸업 대상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 공교육정상화법의 시행 그 후
공교육정상화법이 시행된 지 두 달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 교육현장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변화는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불암고등학교의 이승진 교사는 “학교의 정기적인 중간․기말고사는 물론, 수업 시간과 방과후학교, 경시대회 등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에서 선행교육이 금지됐다”고 말하면서도 “학교 수업 현장에서 특별하게 달라진 점은 없으며 학생들은 여전히 선행학습을 위해 학원을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학부모들 또한 특별히 달라진 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이하 참교육 학부모회) 박이선 부회장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경우 학부모들은 사교육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라며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할 수 없으면 사교육기관에서 해결하면 된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법안에 대해 시큰둥한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다만 학원가의 경우 법안의 영향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한국학원총연합회 산하 전국보습교육협의회(이하 전보협) 조문호 회장은 “(공교육정상화법 시행 이후) 상당수의 학원들이 선행교습 강좌를 폐강하거나 축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급학교의 입학전형에서 이전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에서 문제가 출제된다면, 시험에 출제되지 않을 부분까지 선행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 공교육정상화법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
학교에서 선행교육을 규제해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겠다는 목적을 가진 공교육정상화법의 실효성을 두고 많은 논란이 있다. 전보협 조 회장은 “선행학습이 필요치 않거나 오히려 보완학습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선행교육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이를 법으로 제어해 학교에서 선행교육이 금지된다면 학원에서도 굳이 선행교습을 할 이유가 없어져 실효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까지는 선행학습에 대한 막연한 선호가 남아 있어 학생들이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계속하는 등 실효성이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흘러 내신이나 입시에 있어 선행교육의 이득이 없음을 체감하게 되면 그 실효성이 입증되리라는 것이다.
반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논평을 통해 “공교육정상화법은 선행학습의 주범인 학원은 방치하고 학교는 단속하는 법”이라며 “학원의 선행학습도 규제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선행학습의 요인인 입시를 개혁해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역시 논평을 통해 “선행학습은 학교보다는 학원, 교습소 등 사교육기관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처벌조항조차 없는 선언적 의미의 광고 금지 법적조항이 과연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라며 의문을 드러냈다. 또한 이 외에도 실제 학교교육현장에서 선행교육이 이뤄지는 것에 대한 현장 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 공교육정상화법의 대안
이처럼 공교육정상화법이 시행된 지 2개월이 지난 현재, 공교육정상화법은 사교육기관에서의 선행교육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그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다.
불암고 이 교사는 “지금의 교육과정에서 학습자들은 입시 등을 위해 결국 선행학습이 필요하게 되기 마련”이라며 “지식중심의 학습이 아니라 토의, 토론을 통한 학습 등 학생이 중심이 되는 수업이 주가 되고, 이 내용이 입시제도에 반영된다면 사교육에 의존하는 경향이 줄어들 것”이라며 장기적인 안목에서 교육과정을 학습자 중심의 학습으로 개정할 것을 주장했다.
전보협 조 회장은 “지식교육이라는 하나의 기준만으로 학교교육과 학원교육을 평가하면, 지식교육만을 전문으로 하는 학원 강사가 전인교육을 아우르는 학교 교사보다 우월하기 마련”이라며 “공교육이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정규교과 시간에 교육과정의 진도대로 학습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방과후학교 등에서 지식교육을 제외한 예체능 및 교양, 특기․적성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 회장은 “학교교육이 학원의 지식교육과 싸우려 할수록 공교육의 본질은 훼손된다”며 학교교육은 다양한 전인교육의 요소를 고루 비교해 국가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으로 판단돼야 함을 역설했다.
한편 공교육정상화법에 발맞춰 한국학원총연합회는 선행교습을 광고해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일부 학원들에 대한 자율 규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학부모나 학생에게 학생의 수준에 맞는 높이의 교육을 권하는 캠페인을 계획 중이다.
발행: 2014.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