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호] 1,034명의 역사교사들, 국정 한국사 교과서 반대 선언

올바른 역사교육 위해 검정교과서 넘어 인정교과서 지향해야

2015-02-04     박성희 기자

발행: 2014. 11. 3.

▲ 마지막 국정 역사교과서인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와 2010년 검정을 받아 채택된 (주)지학사의 고등학교 한국 교과서이다.

  지난 10월 2일 전국역사교사모임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내용의 선언을 발표했다. 교육부의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계 공고를 앞두고 발표된 이번 선언은, 교육부의 국정화 검토 논의를 반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이번 선언은 전국 780개 학교 1,034명의 교사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 지금의 역사교과서 발행체계
  교과서는 발행 체계에 따라 국정과 검정, 인정교과서로 나눌 수 있다. 국정교과서는 교육부에서 저작권을 갖고 편찬하는 교과서로, 각 급 학교는 해당 교과목의 국정교과서가 있을 경우 반드시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 검정교과서는 해당 교과의 국정교과서가 없는 경우 선정해 사용하는 교과서로, 민간 출판사가 교육부에서 제시한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에 의거해 집필한 뒤 교육부장관의 검정을 받아 출판한다. 국정교과서와 검정교과서가 둘 다 없는 경우 사용되는 인정교과서는 교육부장관 또는 교육부장관의 위임을 받은 각 시․도 교육청의 인정을 받은 교과서이다. 이와 같은 검․인정교과서는 민간 출판사에서 여러 종류를 출판한다는 점에서 국정교과서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현재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쓰이는 역사교과서(역사 1·2,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는 검정교과서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제2차 교육과정까지 검정교과서로 발행되던 역사교과서는, 유신집권기 제3차 교육과정이 시작된 1974년부터 국정화됐다.
  이후 1982년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의 검정화를 필두로, 중학교 사회와 신설된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의 교과서가 제7차 교육과정 시기에 검정교과서로 발행됐다. 마지막까지 국정으로 남은 역사 교과서는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이다. 이 역시 2007년 교육과정 개정과 함께 한국 근․현대사와 통합되며 한국사 교과서로 개편돼 검정화됐다. 이로써 2012학년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세대를 마지막으로 국정 교과서는 자취를 감췄다.

◇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교사들의 목소리
  한국사 교과서가 완전히 검정교과서로 전환된 것은 채 5년이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말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가 내용상의 수많은 문제점들로 단 1개 학교에서만 채택되자, 교학사 교과서를 지지했던 뉴라이트 등 보수인사와 단체들을 중심으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논의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또한 지난 8월 27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사실을 하나로 가르쳐야 국론 분열의 불씨를 만들지 않는다”며 “한국사에서 공통으로 배워야 하는 내용을 다루는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발언하는 등 한국사 교과서가 국정화될 기미가 보이자, 학교의 교사들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고 나섰다.
  1,034명의 교사들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 퇴행, 단연코 거부한다’는 제목의 선언문에서 “역사교사들이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이유는 검정 한국사 교과서로 수업을 하며 기존의 국정교과서가 얼마나 비교육적인가를 체험한 결과”라며 반대의 경위를 밝혔다. 이들은 “친일과 독재 미화로 학교 현장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은 뉴라이트 인사들이 한국사 관련 주요 기관의 장으로 있으며 펴낼 국정 한국사 교과서는 이미 화석화된 유신 시기의 국정 국사 교과서와 닮을 수밖에 없다”며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대대적인 반대 운동에 나설 것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화를 추진한다면 대안적인 역사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지혜를 모을 것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역사수업이 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 등을 결의했다.
  선언문을 발표한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조한경 회장은 “교과서의 직접적인 사용자는 교사와 학생인데, 교과서를 매개로 수업을 하는 교사들의 의견은 전혀 듣지 않고 (국정화가) 추진되고 있어 현장에 있는 교사들의 목소리를 강력하게 낸 것”이라고 선언의 취지에 대해 밝혔다.
  국정교과서가 역사교육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염려돼 서명에 참여했다는 서울 원묵고등학교 신나령 교사는 “내가 아는 역사교사 중 국정교과서에 찬성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밝혔다. 신 교사는 이어 “이는 교과서에 담긴 이념의 문제뿐 아니라 교과서 그 자체가 학습자의 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검정교과서를 사용하며 알았기 때문”이라며 역사교사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갖는 생각을 전했다.

◇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사학계의 목소리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역사교사들의 선언에 이어, 학계에서도 교육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움직임에 반대하고 나섰다. 다양한 분야의 총 16개 역사학회가 소속돼 있는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는 지난달 30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의 중단을 엄숙히 촉구한다’는 제목의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역사학계·역사교육계의 중론과 국민적 공감대를 존중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즉각 중단할 것 ▲역사교육이 헌법정신에 따라 안정적,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외부의 부당한 개입과 간섭을 차단할 것 ▲역사교과서의 개편․검정 주기를 정례화해 역사교과서 집필․검정의 내실화를 기할 것을 교육부에 요구했다.
우리학교 김한종(역사교육) 교수 역시 “교과서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적합한 교과서가 다르고 역사를 포함한 인문사회과목은 사실에 대한 해석과 관점이 각기 다를 수 있는데, 국정교과서는 다양한 교과서를 접할 기회를 박탈하고 교과서를 편찬하는 정권의 관점과 해석만을 관철시킬 가능성이 높은 점 등의 문제가 있다”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했다. 이어 김 교수는 “지금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학문․교육적 논의에서 도출된 것이 아닌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라며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세력을 비판했다.

◇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해 필요한 교과서
  최근 학교교육에서는 한국사 교육의 중요성이 점점 커져,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는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된다. 이러한 경향에 발맞춰 올바른 역사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그 주된 수업자료인 교과서의 변화도 필요하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지금의 검정교과서는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국정교과서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며 “검정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검정제도를 완화하고 인정교과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기준으로 국어, 도덕, 사회, 역사교과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들은 전부 인정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다.
  한편 지난달 8일 있던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교육부 대상 국정감사에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질문에 대해 “국정제 또는 검정제의 선택은 공론화를 거쳐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배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발표는 각계의 의견 수렴 결과를 검토해 10월 말 이후에 발표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