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호/시론] 우리 대학의 만성적인 위기와 대응 자세
발행 : 2014. 9. 29
‘우리 대학이 위기다.’ 이 말은 10년 전 내가 다른 대학에 있다가 우리 대학으로 옮긴 첫 학기에 선배교수에게서 들었던 말이기도 하고, 지금 많은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명제이기도 하다. 주기적으로 이어지는 대학평가에서 그다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점수마저 유지하기 위해서는 학부나 대학원의 개설 강좌나 입학생수를 계속 줄여가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더 나아가 미래도서관이 설계 단계에 들어서고 있지만,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 상당한 규모의 대응 투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대안이 나오지 않고 있어 답답한 마음으로 도서관이 들어선다는 자리를 내려다보곤 한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중등학교를 아우르는 새롭고 체계적인 교사 양성체제를 구현하기 위한 대안으로 설립된 ‘한국교원대학교’는 30년 역사를 맞이하면서 그 새로움과 체계성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대신 교육대학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지방 국립대학도 아닌 어정쩡한 위상을 유지하면서 겨우 버텨내고 있다는 암울한 느낌이 엄습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억지로라도 산책에 나서 우리의 넓은 정원이 주는 평안함과 느긋함으로 그 마음을 달래며 어떤 미래를 그려가야 할까 하는 고민에 잠기곤 한다.
요즈음 본부 앞 전나무숲길과 음악관 뒤 소나무숲길을 걷노라면, 떨어진 솔방울을 거머쥐고 그 안에 숨겨진 열매를 찾는 청설모들의 부지런한 몸짓과 마주하곤 한다. 가까이 다가가도 모를 만큼 열중하고 있는 그 작은 짐승의 밉살스럽지만 순박한 눈망울을 바라보다가 저들의 겨울 대비가 우리보다 나은 것 아닌가 하는 회한에 잠기기도 한다.
물론 이런 대학의 위기가 우리 대학만의 위기는 아니다. 1980년대 이후 군부정권을 거치면서 부패와 연루되어 급속도로 증가한 대학들은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만큼의 외적 위기, 즉 입학 대상 학생의 절대적 감소라는 위기를 맞고 있다. 거기에 삼성이나 두산 같은 대기업들이 이른바 ‘대학 경영’에 직접 뛰어들면서 대학의 기업화와 시장화 또한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총장은 당연히 이득을 많이 남기는 경영자여야 하고, 교수들은 학생들의 취업 지원과 많은 편수의 논문을 생산해내야 하는 가능적 지식인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학생들 역시 대학은 취업준비 공간 이외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강요받고 있다.
이 거대한 물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내 사랑하는 가족들이 그 물살에 휩쓸려가고 있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나 자신도 쓸려가고 있는 중이어서 내 몸 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그럴수록 물살의 흐름과 방향을 직시하면서 그 위기를 피할 수 있는 대안을 찾고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지금 우리의 위기는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거대한 홍수의 물결 그 자체이다. 인간의 본성 속에 이기심에 근거한 경쟁의 욕구만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던 20세기 인간학의 패러다임이 심하게 흔들리는 대신, 타인에 대한 공감의 눈길에 기반한 협력과 어우러짐의 인간학이 뇌과학의 적극적 지지를 받으면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대학은 여전히 뒤쳐진 그 경쟁의 칼날을 고수하면서 개혁과 발전 방향을 주로 임용률을 높이거나 교수들의 논문 편수를 늘리는 양적인 팽창으로만 설정하는 어리석음을 노정시키고 있다.
물론 교사 양성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우리 대학이 교사로서의 일자리를 확보하는 임용시험에 적절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당위적 요구이다. 그러나 그것과 함께, 아니 그 이전에 우리가 양성하고자 하는 교사가 어떤 교사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의 과정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근대 학교 체제가 급속도로 균열을 맞고 있는 21세기 초반을 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절실한 요구이기도 하고 ‘한국교원대학교’이기에 피해갈 수 없는 요구이기도 하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교사, 시대와 역사의 흐름을 관조하면서 어떤 사람들을 길러내야 하는지에 대한 통합적인 시선과 실천력을 지닌 교사, 그리고 유치원과 초ㆍ중등학교는 물론 다양한 대안학교 체제까지도 연계성과 차별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스스로 앞장서 미래를 이끌어내는 교사가 우리 한국교원대학교가 지향해야 하는 교사상이다. 시장자본주의에 기반한 거대한 경쟁의 칼날을 정면으로 마주보면서 이런 본질적인 고민들을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분명 우리 대학의 미래는 밝아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며 다시 고적한 산책길에 나서고 싶어지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