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호] 2015 개정 교육과정 유감

2015-02-03     최병순(화학교육) 교수

발행 : 2014. 9. 29

교육부는 9월 24일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을 발표하였다. 이번에 발표된 총론 주요사항은 2015년 9월에 고시될 예정인 새 교육과정 개발의 지침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교육부가 제시한 새 교육과정 개정의 추진 배경은 ‘관행적 문•이과 구분 및 수능과목 중심의 지식 편식 현상을 개선하고, 많이 가르치는 교육에서 배움을 즐기는 행복교육으로 교육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인문•사회•과학기술에 대한 기초 소양을 함양하여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동안 잦은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교육 현장의 혼란과 피로감 호소에도 불구하고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 개정은 비교적 교육계의 폭넓은 공감을 받아왔다. 그것은 새로 개발되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 현행 교육과정의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중등교육의 수능과목 중심 지식 편식 현상을 개선시킬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총론 주요사항은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새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지식 편식을 야기하는 주 요인인 고등학교 교과별 필수이수 단위를 현행 교육과정과 거의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으며, 교육과정에 부합하는 수능 및 대입제도의 확정을 2017년으로 미룬 채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안았기 때문이다.
새 교육과정 개정을 주도하고 있는 국가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회는 9월 12일에 개최된 공청회에서 교육과정 개정의 기본 방향으로 ‘인문•사회•과학기술 기초 소양을 균형 있게 함양하기 위한 교육과정 개발’과 ‘학생 개개인의 꿈과 끼를 키워주는 맞춤형 선택학습이 가능한 교육과정 개발’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들 두 기본 방향은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기초 소양을 균형 있게 함양하기 위해서는 각 교과의 교과목을 고르게 이수할 필요가 있으며, 꿈과 끼를 키우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적성과 자질에 따른 선택학습을 확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기초 소양 함양을 위한 각 교과별 필수 이수 단위 수와 선택학습을 위한 이수 단위 수를 얼마로 설정할 것인가에 지혜를 모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번에 발표된 총론 주요사항을 보면 국어, 수학, 영어, 사회, 체육, 예술 교과(군)의 필수이수 단위를 각각 10단위로, 한국사, 과학, 기술•가정/제2외국어/한문/교양 교과(군)의 필수이수 단위를 각각 6단위, 12단위, 16단위로 제시하여, 현행 교육과정과 비교해 볼 때 한국사가 신설되고, 과학의 이수단위가 2단위 증가한 것을 제외하고는 변화가 없다. 현행 교육과정과 거의 변화가 없는 새 교육과정의 교과목 단위 배당 기준을 가지고, 현행 교육과정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지식 편식 현상을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것인지 교육과정연구위원회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다. 반면에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단위 수는 86단위나 되어서 학교장이 대학입시 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영할 가능성은 활짝 열려 있는 셈이다. 학교장에게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창의적 체험활동(24단위)을 제외한 고등학교 교육과정 총 이수단위(180단위)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86단위를 학교 자율과정으로 배정한 것은 과도하다는 생각이다. 결국 새 교육과정에서도 입시중심의 파행적인 교육과정 운영의 가능성은 여전히 잠재해 있는 셈이다. 이번 개정에서 새 교육과정 개정의 기본 방향을 인문•사회•과학기술 기초 소양의 균형 있는 함양에 두었다면, 각 교과(군)의 필수 이수 단위를 현행보다 적어도 5단위 정도 높였어야 했다. 그런 경우에도 학교 자율과정에는 50단위 정도가 배정될 수 있어,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우기 위한 교육과정의 자율적 운영은 충분하다. 이러한 문제점은 공청회에서 충분히 제기되었다. 그런데 왜 새 교육과정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지 못한 것일까?
그 이유의 한 단면이 지난 12일에 열린 공청회에서 드러났다. 공청회에서 개회사와 축사를 한 국가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회 위원장과 교육부 차관은 공히 공청회 과정에서 각 교과별 이기주의적인 주장은 하지 말 것을 부탁하였다. 각 교과의 요구와 주장을 교과별 이기주의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주장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들어서 알고 있는 한, 각 교과의 주장은 대부분 나름대로의 논리와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각 교과의 요구를 모두 담기에는 교육과정이라는 그릇이 충분히 크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각 관련 분야 간의 이해와 양해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의사소통을 위한 공청회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각 계의 주장을 집단 이기주의로 치부하는 한, 그 주장을 경청하고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새 교육과정이 확정 고시되기 까지는 아직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다. 그 동안 있었던 각 계의 요구와 주장을 이기적인 주장이라 생각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숙고하여, 2015 개정 교육과정을 교육관계자들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새 작품으로 재탄생 시킬 것을 국가교육과정연구위원회에 당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