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호] 총장께 드리는 당부

2015-02-03     김종우(불어교육) 교수

발행: 2014. 6. 2.

‘모골이 송연해지다’라는 말이 있다. 털끝이 쭈뼛해질 정도로 끔찍스러운 심정일 때 하는 말이다. 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다’라는 말도 있다. 지극히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낯을 들 수가 없는 심정일 때 하는 말이다. 나는 얼마 전 한 조간신문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고는 이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그 기사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교육부 산하 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이 극우보수 편향적인데다가 함량 미달인 교사연수를 실시해 논란이 되고 있다. (...) 연수에 참석한 교사들은 특히 김주성 총장의 강의에 강한 불쾌감을 표했다. ‘우리 아이들 어떻게 가르칠까’라는 주제로 공교육 정상화 등을 강연할 예정이었는데, 실제론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미화가 주를 이뤘다는 비판이다. 한 교사는 “김주성 총장이 이승만과 박정희가 영웅이라는 식으로 말해 당혹스러웠다. 교사들이 항의를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중연, ‘이념 편향’ 교사연수」, 한겨레신문, 2014년 8월 25일자)
위의 기사는 “‘한국사 교육 강화’한다더니 이승만, 박정희 미화...”, “‘초등 수준 강의, 정권 옹호’ 비판도” 등과 같은 부제와 더불어 제시되어 있었다. 대외적으로 우리 대학을 대표하는 총장이 이념 편향적인 행사에서 ‘초등 수준’의 강의를 했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한국교원대학교가 ‘강한 불쾌감’과 ‘당혹스러움’의 원인이 되었을 현장의 분위기를 짐작해 보면 모골이 송연해지고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어들고 싶은 심정이다.
한 개인이 이승만, 박정희라는 두 전직 대통령을 영웅으로 떠받든다고 한들, 심지어 그들을 신으로 숭배한다고 한들, 그것은 다른 사람이 관여할 바가 못 된다. 그것은 프랑스 문학 연구자인 내가 사르트르와 카뮈를 영웅으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사에서 비판하고 있는 ‘초등 수준 강의’를 한 개인이 한국교원대학교의 총장의 직함을 가지고 그렇게 했다고 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는 한국교육의 중심을 지향하면서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우리 대학을 대표하는 총장으로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김주성 교수가 편향된 말과 행동으로 우리 대학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그 장래를 위태롭게 함으로써 많은 구성원들에게 걱정을 끼친 일이 이번이 처음만은 아니다. 작년 가을, 김주성 교수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관련 논란의 와중에서 한 일간지 칼럼에서 총장이라는 직함을 내세우고 “맹목적인 광기의 종북의식”이라는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용어를 동원하면서까지 해당 교과서를 옹호함으로써 많은 국민들의 비판과 대학 구성원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그보다 앞서 종합교원연수원에서의 부적절한 강의로 우리 대학의 종합교원연수원의 위상을 위태롭게 한 적도 있다.
총장의 이러한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이미 몇몇 분들이 구성원의 당연한 권리로 본지의 ‘시론’과 학교 홈페이지의 ‘열린총장실’ 등을 통해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중단을 요청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적절한 언행이 반복되고 있어 대단히 우려스럽다. 앞으로 개인적 소신만을 앞세운 채 총장의 신분을 망각하고 학교의 위상을 침해할 수 있는 발언을 계속하고자 한다면, 총장은 마땅히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데 있어 자신의 직위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중요한 윤리적 덕목이기 때문이다.  
총장 개인의 편향된 소신이 자칫 한국교원대학교 전체 의견으로 잘못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으며, 그러한 오해가 초래할 물의는 당장 우리 대학의 위상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다. 다시 말하거니와, 개인이 어떤 소신을 표명하는 것은 존중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적절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직함의 이름으로 편향된 정치적 소신을 표명하는 것마저 존중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총장께 개인의 편향된 소신을 공표하는 행위는 한국교원대학교의 총장이라는 직함을 내려놓은 다음에 하실 것을 간곡히 당부 드린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정도의 부끄러움은 둘째로 치더라도,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우리 대학의 장래가 위태롭게 느껴져서 드리는 당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