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호/칼럼] 단편적 일상을 즐겨도 단편적 인간이 되지는 않기를
‘숏.확.행’ 짧아서 확실한 행복. 최근 가장 인기가 많은 어플리케이션 중 하나인 ‘틱톡’의 표어이다. 틱톡(TikTok)은 15초짜리 짧은 모바일 비디오를 업로드하거나 즐길 수 있는 앱이다. Z세대를 중심으로 틱톡 열풍이 불고 있다. 모바일앱 시장조사업체 센서 타워에 따르면, 2019년 4분기 앱 다운로드 현황(애플 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에서 틱톡은 전 세계 두 번째로 많이 다운로드한 앱으로 선정되었다. Z세대는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를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세대를 말한다. 이들은 TV와 컴퓨터보다 스마트폰을 선호하며, 텍스트보다 이미지와 동영상 콘텐츠를 선호한다. 즉각적인 정보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틱톡과 같은 숏폼 콘텐츠(short-form contents)가 최근 문화 및 소비 트렌드이다. 넘쳐나는 콘텐츠 속에서 시청자의 이탈을 막기 위한 짧고 직접적인 스토리 구성이 그 특징이다. 틱톡 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의 ‘스토리’ 기능, 유튜브 ‘짧은 동영상’ 서비스 등 숏폼 콘텐츠는 그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이에 따라 ‘요즘 사람들’은 짧고 집중적인 정보를 갈수록 많이 향유하고 있다. 젊은 세대, Z세대에 속하는 현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스타그램 ‘스토리’ 기능은 상당히 일상적인 기능으로 자리 잡았다. 본인이 먹은 음식, 방문한 장소, 수행한 일까지 사진 한 장 혹은 짧은 움짤로 올릴 수 있고, 이 스토리는 24시간 내에 자동으로 삭제된다. 실제 필자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든 이후 게시물은 올리지 않았지만 스토리 기능은 활발히 이용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일상과 감상을 간편하게 접할 수 있어 오락성과 편리성이 대단하다.
일상에 스며든 ‘단편 문화’의 흔적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잉여 시간이 생기거나 심심할 때, 익숙하게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확인한다. 자동으로 넘어가는 스토리 기능에, 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친구의 스토리까지 볼 수 있다. 정말 아무 생각과 의도 없이도 가능한 일이다. 굳이 의식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아도 짧고 가시적인 정보가 제공되기에 인스타그램 스토리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오히려 이제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굳혀진 듯하다. 틱톡도 마찬가지이다. 직접 영상을 찍어 올리지는 않아도, 틱톡에서 유행하는 챌린지 혹은 노래 등은 젊은 세대에 유행하고 있다. 그리고 젊은 세대에 유행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최근에는 이 문화를 향유하는 세대의 장벽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전반적인 문화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런 전반적인 문화생활의 변화는 다분히 일상적인 것으로 굳어졌고,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무엇을 주로 즐기고 있고, 무엇이 우리에게 당연한지 지속적으로 돌아보아야 삶을 보다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다. 이런 문화생활의 변화, 즉 짧고, 단편적이고, 즉각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민해보아야 한다. 실제로,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스쳐가거나’, 틱톡 인기 영상이 무엇인지 볼 때, 그닥 나의 인지 능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감각적인 자극을 받음을 느낀다. 이는 물론 편리하다. 하지만 편리함에 익숙해져 점차 이런 단편적 정보만 골라 보는 자신을 어느 순간 발견할 수 있었다. 짧고 단편적인 문화에만 익숙해지다 보니, 깊고 생각해볼 거리가 있는 내용은 불편하게 다가왔다.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게 될 수도 있는 변화였다.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면, 그리고 더욱 위험하게도 그런 사람들이 본인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다면, 이는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문제로 번진다. 개인이 단순해지는 것은 학습과 인지의 문제를 넘어, 사회의 건강을 해친다. 판단력을 잃은,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사회를 만든다.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은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기사 제목, 혹은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현재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들은 자극적인 기사, 혹은 본인이 선호하는 컨텐츠만을 받아들이고 빠르게 판단을 내려버린다. 혹은, 비판 의식이나 의도적 노력 없이 모든 정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서 생성하는 수많은 저질의 영상을 아무런 생각 없이 향유하는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변화가 가지는 부정적인 면에만 기울어 생각해선 안 된다. 우리가 현재 즐기고 향유하는 문화는 비극도, 말세의 표시도 아니다. 그저 오늘날 사람들의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다. 문화와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상호 연관성, 즉 사람들의 성향으로 특정 문화가 유행하지만, 유행하는 문화로 사람들의 성향이 변화하는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문화는 무엇인지, 그대로 영향을 받기만 해도 괜찮은 것인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서 언급했던 문화에 매몰되고 그 영향만 고스란히 받게 되는 것이다. 반면, 내가 즐기고 있는 것들에 나의 주체성이 포함되어 있다면, 우리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은 피하고 더욱 선도적인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다. 간편하고 편리한 정보 습득 방식을 활용할 수 있고, 보다 적극적으로 문화의 생산자로 거듭날 수 있다. 단편적인 정보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아무런 판단과 의식 없이 노출되어 있지는 않은지, 경계가 필요한 능력이다. 우리에게 닥친 ‘단편으로의 변화’를 피하려고 하는 것은 부적응이다. 피하지 않고, 변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미래 우리의 모습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