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호/교육현장엿보기] ‘숲’의 환경이 바뀌어도 ‘나무’를 결코 놓치진 말자

홍성민 파견교사 (교육공학 전공)

2020-11-16     한국교원대신문

코로나19로 인해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교육분야에서도 거부할 수 없는 급진적 변화가 일어났다. ‘교사의 에듀테크 활용 역량’이나 ‘학생의 디지털 리터러시’ 같은 부분들은 더 이상 장차 다가올 미래를 위해 ‘준비하면 좋은 항목’이 아닌, 지금 ‘당장 빠르게 갖춰야할 필수 항목’이 되어버렸다. 때마침 교육공학이라는 시의적절한 전공으로, 파견근무라는 감사한 기회를 갖게 된 나로선, 최전방에서 악전고투하신 동료선생님들께 대한 죄송함때문이라도 더욱 열심히 연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사랑하는 모교의 신문에 기고할 소중한 기회를 맞아, 원격교육 체제 개선방안에 대해 어줍짢은 해결방안이라도 기고해 볼 참이었다.

그런데 퇴고 직전이었던 어제, 스마트폰으로 한 기사를 접하곤, 내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에 Del키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국가교육회의가 학생, 학부모, 교사 등 약 2만5천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가장 희망하는 교사상은 ‘개별학생에게 관심을 쏟으며 이해와 소통하는 교사’인 것으로 나타났다(에듀프레스, 2020.11.10.자 기사). 어찌보면 뻔한 것 같은 이 기사에, 이상하리만치 잠시 잊고 있던 과거에 대한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지난 약 10년간 중-고등학교에서 담임을 계속 맡아오면서, 착하고 좋은 제자들을 만나 교원평가에서도 늘 과분한 평가점수와 많은 칭찬멘트들을 받았다. 학급관리 및 수업기술에 있어서 나름의 작은 노하우와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항상 자기평가란를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들었던 책망은, ‘왜 그때 샤이(shy)하게 끙끙대고 있었을지도 모를 학생들을 먼저 좀 더 세심하게 살피고 도와주지 못했을까?’였다. 가끔이긴 했지만, 유사한 내용으로 날카롭게 나의 그런 부족함을 지적해준 학생의 교원평가 서술도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하다가도 이내 수긍이 가면서 용기내서 쓴소리를 해준 그 학생에게 고마울 정도였다. 스스로도 매년 다음해의 목표를 ‘개별학생에게 더 세심하게!’로 설정하곤 했다. 그러나 목표에 비해서 결과는 매년 비슷하게 되풀이됐다.

장교생활의 경험탓인지, 아니면 본래 성격탓인지, 아니면 애초에 교사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늘 숲(학급 및 수업에 대한 초기 시스템 설정)의 조성과 변수 관리(입시에 대학 조력, 문제행동 해결 등)에 대해 비교적 잘 대처한 것에 비해, 늘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혼자서는 끙끙대고 있었을 수도 있는 작은 나무(개별학생)에게는 진심을 다해 먼저 살피고 도와주지 못한 것 같다. 지금도 AI와 같은 신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가진 채, 정작 그 기술을 활용하여 실제 학생들에게 줘야 할 ‘사람 교사’ 개인으로서의 나는 얼마나 성숙했는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작년부터 딸이 초등학생이 되었다. 학부모가 되어보니, 위 기사의 ‘개별학생’이라는 표현이 더욱 마음에 닿는다. 어찌보면 참 이기적이지만 솔직하게도,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전체적으로’ 훌륭하고 능력있는 교사보다는, 조금은 거친 면이 있더라도 ‘나’ 혹은 ‘내 아이’에게 따뜻하고 세심하게 도움을 주는 선생님께 솔직히 더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올해같은 상황에선 성의있는 강의영상을 만들어주시는 선생님도 참 그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하지만, 솔직히 아이의 작은 행동과 태도 변화에도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정성스런 격려를 보내주시는 분이 더욱 고마운 것이 사실이다. 원격수업(현재는 그나마 대면수업이 늘면서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상황은, 많은 교사들로 하여금 나와 같은 우를 범할 가능성을 높이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소위 ‘앞서간다’고 자타에서 평가되는 교사들이 그런 위험성이 더욱 높을 것 같다. 나 역시 아마 올해 현장에 있었다면 멋들어진 강의동영상이나 시스템을 활용한 학업관리 같은 것은 충실히 잘 이행했겠지만, 그 화면과 숫자 너머에 있는 개별학생의 어려움에 대해서 과연 잘 살폈을지 추측성 반성을 해본다.

교육에 완벽한 정답이 어디 있겠으며 이 어려운 상황 속에 선생님들께서 이미 정말 많이 고생해주고 계시지만, 그래도 ‘모니터’와 ‘마스크’ 넘어 더욱 혼자서 속앓이를 하며 선생님의 관심과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작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게, 조금 더 세심한 방법과 태도로 진심을 쏟을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과한 기대를 가져본다. 또한 교원대 후배님들이 부족한 선배의 후회와 반성 내용을 반면교사 삼아, 더욱 ‘기술’보다는 ‘마음’이 따뜻한 교사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