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7호/사회탑] 택배노동자들의 연이은 사망 …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해야

2020-11-02     이희진 기자

올해 택배노동자가 연이어 사망했다. 그중 대부분은 코로나19로 인한 물량 증가와 과로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이전부터 열악했던 택배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는 실태조사를 통해 ▲주당 평균 노동시간 71.3시간 ▲산재보험 가입 비율 15% 등 택배노동자들이 처한 노동환경의 실태를 밝혔다. 이에 각 택배사들이 과로사 방지 대책을 내놓고,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하 ‘생활물류법’)’의 제정도 추진되는 등 택배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 열악한 택배 노동 환경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하 ‘택배노조’)에 따르면 올해만 벌써 15명의 택배 서비스 관련 노동자가 사망했다. 그중 배송 노동자가 10명, 분류 노동자나 운송 노동자까지 합치면 15명이다. 2019년까지만 해도 산업재해 사망이 1건에서 2건 정도였다. 올해에 사망자가 치솟은 배경에는 코로나19로 인한 택배 물량 증가가 놓여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진짜 이유, 택배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놓여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단체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대응에 나섰다.

대책위원회가 800여 명의 택배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택배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택배노동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으로 나타났다. 물량이 많은 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평균 12.7시간이며 상대적으로 물량이 적은 월요일과 토요일도 10시간 내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노동시간은 대체로 이전보다 30% 내외 증가했다. 문제는 특히 분류작업이 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택배노동자가 배송을 출발하기 전, 대리점에서는 대형차량에서 내린 화물을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택배노동자의 임금은 보통 택배 하나당 수수료를 통해 지급된다. 분류작업은 택배노동자들의 업무 중 43% 가량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실제로 수수료가 지급되는 업무는 아니다. 이른바 ‘공짜 노동’이다. ‘공짜 노동’이 늘어나는 와중에 노동자들은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실태조사 결과, 택배노동자들의 약 25.6%는 업무를 하는 동안 식사를 전혀 하지 못한다. 운송이 늦어지게 될 경우, 배송 닦달 등의 괴롭힘에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택배노동자들의 실태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의 가입 비율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택배노동자 5만여 명(미등록 노동자 포함) 중 7천 4백 명 수준(약 15%)만이 산재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난다. 산재보험의 미가입자가 많은 이유는 본인이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대리점에서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 작성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택배노동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1인 자영업자 신분으로 계약을 맺는 특수고용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이에 택배노조는 “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계약서를 쓰지 않아 입직 신고를 하지 않는 택배노동자가 60%에서 70% 정도이다. 그리고 일반노동자들은 산재보험료를 사용자 측에서 담당하지만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노동자들의 경우 산재보험료의 50%를 스스로 부담한다”라며 어려움을 드러냈다.

 

◇ 택배사들의 과로사 방지 대책

지난 10월 22일, 택배노동자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온 CJ대한통운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이은 택배기사 사망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CJ대한통운은 재발 방지책으로 ▲택배 분류인력 4,000명 단계적으로 투입 ▲자동 분류장치를 추가 구축해 2022년까지 현장 자동화 확대 계획 ▲초과물량 공유제(하루에 배송할 수 있는 적정 물량을 계산하여, 초과 물량이 나오는 경우 택배기사 3, 4인이 팀을 꾸려 분담하는 제도) 도입 검토 등을 제시했다. 롯데택배는 지난 27일부터 택배노조가 수수료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하자, 지난 29일 노사 간 잠정 합의를 도출했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합의 주요 내용은 ▲수수료 인상 ▲패널티 제도 즉각 폐지 등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처우 개선이 노조 측에만 우선적으로 적용이 된다며 비판이 일고 있다. 또한 분류 지원 인력을 1,000명 투입하겠다는 대책도 인건비 부담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택배노조 측은 “분류작업 관련해서는 긍정적인 점도 있지만 우려되는 점이 있다. 문제는 현장에서 대리점이 지급하는 분류인력의 인건비 50%를 택배기사들에게 전가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 생활물류법은 택배 서비스 관련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을까

지난 10월 8일, 생활물류산업의 육성과 택배·이륜차 배송 서비스 종사자의 고용과 처우 개선 내용을 담은 생활물류법을 연내 제정하기 위해 정부·국회·사업자·종사자가 참석한 협약식이 열렸다. 생활물류법에는 ▲생활물류서비스업 신설 ▲택배업 등록제 도입 ▲택배서비스 종사자에게 사용자와의 택배서비스 운송 위탁계약 갱신 청구권 6년 보장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택배노동자 측에서는 택배기사의 처우 개선 등의 내용이 담긴 생활물류법 제정을 반기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전국개별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전국용달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3개 단체는 생활물류법 제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생활물류법 제정으로 운송수단이 무한공급돼 기존 화물차주의 생계권을 위협한다는 이유다. 생활물류법은 20대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했다가 이번 21대 국회에서 다시 나온 법안인 만큼 여전히 논란이 적지 않다. 당사자들 간의 의견을 수렴하고 개선하는 노력을 통해 생활물류산업이나 운송사업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우리나라 생활물류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법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