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호/교수의 서재] 오만과 편견을 넘어, 그대로의 당신을
람의 첫인상은 만난 후 3초 안에 결정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첫 인상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테다. 잘못된 첫인상은 여러모로 관계를 틀어지게 하고, 첫인상으로 인한 편견은 그 사람을 깊이 이해할 수 없게 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 오랜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 대해 깊이 이해하면 좋겠으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에 오랜 시간을 쏟을 수 없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틀어지고 엇나가는 관계에 대해, 나아가 우리의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화학교육과 백성혜 교수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 젊은 시절 인상 깊게 읽으신 책은 무엇인가요?
젊은 시절이라고 하니 어떤 책을 고를까 하다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골랐습니다. 제인 오스틴은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영국 사람들이 사랑하는 작가인데요, 아무래도 질문이 ‘젊은 시절 인상 깊게 읽은 책’에 대한 것이다 보니 선정했습니다. 이 책은 연애소설인데, 다들 젊은 시절에는 연애소설을 좋아하지 않나요? 저는 젊은 시절 연애소설이 재미있었고 좋아했습니다. 교수라고 다를 것이 있나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삼중당문고>라고 해서 작은 사이즈의 세로로 읽는 책이 있었습니다. 제가 책은 매우 좋아하다보니까 부모님께서 어느 날 큰 결심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체 300권의 <삼중당문고> 전집을 구매하셨죠. 옛날에는 도서관이 잘 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장서도 풍부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틈 날 때마다 <삼중당문고> 전집을 하나씩 읽었는데, 어느 날 꺼내어 읽은 책이 「오만과 편견」이었어요. 무척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 「오만과 편견」이 인상 깊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연애소설이라고 하면 아주 멋지고 능력 있는 남자가 예쁘고 능력 있는 여자를 만나서, 혹은 반대로 여자가 남자를 만나서, 소위 ‘썸’이라 불리는 것을 타고, 점점 사이가 깊어지다가 종장에 이르게 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만과 편견」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일반적인 연애소설은 아니었습니다.
「오만과 편견」은 19세기 영국의 사회를 묘사하는데,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매우 세세히 묘사했어요. 소설의 주인공들은 결혼에 이르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편견, 심리적·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습니다. 진실로 향하는 과정에서 우리도 많은 경우 우리 식대로 해석하지 않나요? 「오만과 편견」은 그런 편견과 오해를 딛고 두 주인공인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작가가 인간 사이의 갈등을 매우 잘 묘사를 했던 점입니다. 저는 앞서 말했듯이, 명작과 삼류 소설의 소재는 같으나, 명작이 삼류소설과 다른 점은 표현 방법과 표현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만과 편견」은 그런 의미에서 일반적인 연애소설이 다루는 소재를 표현의 아름다움과 세밀한 묘사로 명작으로 승화시켰고,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인상 깊은 부분이나 구절이 있나요?
저는 작중 대사인 ‘편견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를 꼽고 싶네요. 이 소설의 중심을 꿰뚫는 한 마디가 아닌가 합니다.
작가는 이 소설의 첫 제목을 「첫인상」(First Impression)이라고 지었었답니다. 작중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첫 만남에서 다아시는 엘리자베스를 무시하는 말을 하였고, 이로 인해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되죠. 다아시는 사실 매우 사려 깊은 사람인데다 상당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는 다아시가 매우 오만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대했어요. 그래서 그 둘은 영영 헤어질 뻔했죠. 그러다 어떠한 계기로 인해 편견이 깨어지게 되는 상황이 생겼고, 엘리자베스는 ‘아 나의 편견으로 인해 그 사람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구나. 내가 편견을 깨야지만 그 사람을 진정으로 볼 수 있구나’하고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소설의 메시지였죠. 물론 다아시도 자신에 대한 편견을 적극적으로 깨려고 하지 않은 점은 잘못했죠. 말을 안 해서 오해가 생기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잖아요.
◇ 이 책은 교수님께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저는 교수를 하고 있다 보니까 제가 제 전공에 대해 가장 잘 안다는 그런 오만함을 가지는 문제가 생겨요. 이 문제는 여러분이 교사가 되어 교육현장에 진출한 후에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질문을 하면 ‘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질문을 하냐’와 같이 편견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 학생의 질문이 핵심적이고 중요한 질문이었을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학생과 교사의 관계에서 ‘내가 너보다 더 많이 알고 있으니 네가 내 말을 들어야지’와 같이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교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우선 교수로서 자신이 전공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서 진실을 못 보는 것이 안타깝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시간이 흐르면 이 오만과 편견에 대해 정당화를 하려 하는 것을 보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 끝으로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오만과 편견」을 주제로 이야기를 끌어가다 보니 맨 마지막에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여러분은 교사를 목표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도 그러했고, 지금도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학생과 소통하지 않고 학생을 무시하는 교사가 산재해 있을 겁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교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히면 학생들이 미래에 대해 공포를 갖게 합니다. 예를 들어 ‘너 이렇게 공부해서 어떻게 먹고 살려고 그러니, 큰일이다’, ‘너 지금 공부 안 하면 큰일난다’와 같이 말입니다. 저는 그 때 공부하지 않아도 인생에 큰일은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러한 학생을 대하는 태도는 학생이 미래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먹고 살아갈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선생님도 인생에 대해 잘 모르는데, 학생들에게 공포를 주어 인생에 편견을 갖게 만드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로서 학생들의 성적을 높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이것을 교사의 사명으로 의심치 않는 것은 분명 편견입니다. 또한 교사가 학생에 비해 많은 것을 안다고 학생을 무시하는 것은 오만입니다. 교사는 학생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학교 학생들이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소통하고 학생들을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교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