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호/세상의창] 진보의 주체, 역사의 주체
‘의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발행 : 2014. 9. 15.
당신은 진보 정당을 지지하십니까, 보수 정당을 지지하십니까? … 질문의 형식과 내용은 다양하겠으나 저마다 한 번쯤은 들어보거나 스스로 고민해 봤음직한 물음입니다. 보통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소신이 확실한 개인은 주저 없이 답하나,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들이 영 껄쩍지근하여 맘에 들지 않는 개인은 그저 ‘모르겠다’, ‘관심없다’와 같은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곤 하죠.
진보와 보수는 어디든지 있습니다. 굳이 정치적인 사안이 아니더라도, 어떤 현상을 그대로 유지할 건지 변화시킬 건지에 대한 고민은 늘 하게 마련이죠. 고(故) 노무현 전(前) 대통령의 말을 빌어 말하자면 보수와 진보는 결국 ‘먹고사는 이야기’임에 틀림없습니다. 정도와 범위는 다르겠으나 끊임없이 논란의 수면으로 떠오르는 각종 이슈들 역시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돼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진보-보수의 양립 구조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둘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모호해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형적인 보수 정당의 기조로 여겨지는 ‘신자유주의’의 여러 조목들(노동의 유연화, 개방…)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 국정 과제로 채택됐습니다. 또한 보수 정당 역시 진보 정당이 목높여 외치는 복지의 가치를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헷갈릴 수밖에 없죠.
국가의 간섭을 배제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보장하고자 규제 철폐, 노동의 유연화, 개방, 감세, 민영화 등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평등을 우선시하는 복지 정책 모두 당의 기조와 분명한 연관성이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명백히 시장 경제가 신성화되는 현 자본주의 사회 분위기에서 신자유주의와 복지 모두 어느정도 필요하다는 데엔 반대하는 이가 없습니다. 다만 진보파와 보수파는 저마다의 소신에 따라 각 분야 정책들의 실현 방향과 범위, 시기를 정할 뿐입니다. ‘보수파’만 신자유주의를 내세우는 건 아니라는 거죠.
이 때 각 당파의 기준점이 되는 것은 정책 마련에 있어 성장과 분배의 비율을 어느정도로 할 것인가입니다. 흔히 보수 정당이 성장(효율성)을 우선시하는 ‘작은 정부’ 찬양론자들로, 진보 정당은 그 반대로 분배(정의)를 가치롭게 여기는 ‘큰 정부’ 찬양론자로 비춰집니다. 이와 같은 발상이 꼭 맞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국 각 당파의 기조는 국가의 역할을 정의내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와 관련해 항상 거론되는 예시가 ‘파이’ 이야깁니다. 국가의 주선으로 파이를 먼저 키운 다음에 나눠 먹자는 보수파의 성장 중심 관점과, 먼저 나눠 먹은 다음에 그 힘으로 파이를 만들어 내자는 진보파의 분배 중심 관점은 당연히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각 노선이 중요시하는 주체가 다르니 어쩔 수 없죠. 따라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성장-분배 두 노선을 함께 채택한 ‘제3의 길’을 주장하는 세력이 생겼으나(실제로 집권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반대하는 강경 진보파나 보수파가 또다시 나섰기 때문에 결국 갈등의 종결로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여러 당파 갈등과 어지러운 사상의 입질, 끝없는 부정부패가 이어지는 사회.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혼동에 빠진 나머지 ‘의식’을 스스로 포기하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고인 물이 역사를 진보시킬까요? 고인 물은, 유입된 물을 다시 배출할 통로 없이 염분만 쌓여 거의 모든 생물들이 살 수 없게 된 죽음의 바다 사해의 처지를 면치 못합니다. 국민의 의견을 묵살한 채로 죽은 물결을 그대로 유지시키고 심지어 그 상태를 발전시키려 하는 나라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이끄는 특정 정치인만이 잘못된 것일까요? 물론 그들에게도 잘못은 있습니다. 그러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도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이루어내는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라고 말했습니다. 의식 있는 ‘몇 사람’ 가지고는 부정한 사회를 바꿀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 사회에는 많은 ‘깨어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지도자가 어떻게 일을 처리하려 들든 많은 깨어있는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다면 큰 이슈로 떠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부조리한 상황은 어딜 가도 있기 마련이며, 우리는 현 상황에서 이를 의식해 부조리가 그냥 지나갈 수 없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 막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순물들이 아무도 모르게 사회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아, 사해 바다처럼 염분 덩어리가 되어 무고한 시민들을 사회 밖으로 내쫓게 될 것입니다.
현명한 이성과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 사안들에도 관심을 가져, 의견을 개진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시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한국의 민주주의는 성숙해집니다. 혐오를 넘어 분노로, 분노를 넘어 실천으로 행하는 시민 개개인이야말로 진보의 주체이자 역사를 이끄는 주체임이 틀림없습니다. 역사는 모름지기 앞으로 나아가는 수없이 많은 시민들의 발자국들이 모여 만들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