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호] 관계에 대하여

2015-02-03     우힘찬(미술교육·12)

발행: 2014. 6. 2.

이번 학기도 벌써 끝을 향하고 있다. 다른 학우님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내가 이번 학기를 돌이켜 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의 질문에 대한 것이다. 교직과목 중 생활지도라는 과목의 과제로 ‘상담심리학 이론에 근거하여 조원들을 인터뷰하고 그에 대해 쓰라.’는 활동을 하게 되었다. 활동 중에 같은 조원인 학우는 나를 인터뷰하며 이런 질문을 나에게 했었다.
 “자신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으며, 같은 편으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답했었다.
 "그렇지 않다."
 
 20대 초중반 이전의 나에게 이러한 질문을 받았다면 다른 대답을 했을 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저 대답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대답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개인 사정상 포항, 대구, 대전, 서울 등지에서 일정기간 체류를 했다. 그 기간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관계를 맺었고 같이 생활을 해봤고 그 속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 대인관계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하기 전엔 다양한 경험을 하고 나면 그 경험 속에서 학자들이나 현인들처럼 ‘원리, 원칙’들을 발견할 수 있을 줄 알았고, 대인관계와 관련한 경험들을 겪는 초기에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내린 가장 확실한 결론은 하나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100%가 없다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 어느새 ‘길가다 마주치는 남보다 못한 사람’이 되어 있던 경우도 있었고,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내 삶 속에서 희미한 존재감을 지녔던 사람이 나에게 잊지 못할 호의와 선의를 베푸는 경우도 있었다. 또 누구보다 좋아하고 아꼈던 이가 내 호의를 악의로 돌려주었던 경우도 있었고, 악감정을 가지고 대했던 이가 나에게 헌신해주었던 경우도 있었다. 이 외에도 나의 ‘당연하다’가 타인의 ‘이상하다’일 수가 있던 경우들도 여럿 있었다. 그러다보니 나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은 ‘아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늘 내버려두어야 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확신하는 것’이다. 모른다고 어려워할 필요도 없고, 안다고 쉽게 생각해서도 안되는 것이 사람이다. 그렇기에 인간관계는 늘 어렵고, 언제나 한결 같을 수 없다. 항상 변화의 여지가 있기에 어렵지만, 그 변화의 여지가 주는 알 수 없는 결과로 인해 때로는 행복할 수도 있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쉽게 얻기 어려운 ‘관계 속의 행복’으로 인해 우리는 나 이외의 타인과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고, 지속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