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8호/사회문화탑] 텔레그램을 통한 집단 성착취 범죄 드러나
미성년자와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발생한 조직적, 집단적 범죄
엄격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사회적 논의 필요해 보여
지난 3월 16일, 텔레그램 상에서 집단 성착취 범죄가 일어난 여러 채팅방 중 하나인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경찰에 검거되었다. 경찰이 확보한 ‘박사방’ 닉네임 개수는 1만 5천여 개에 달한다. n번방 등 집단 성착취 범죄가 일어난 수많은 텔레그램 채팅방 참여자 수를 더하면 26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 텔레그램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집단 성착취 범죄
2018년 하반기부터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와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집단 성착취 범죄가 꾸준히 발생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지금까지 확인된 피해자만 70명이 넘는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유인해서 성착취 영상을 촬영하도록 했다. 이들은 성착취 영상을 텔레그램 채팅방에 돈을 받고, 유포했다.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고자 성착취 영상 거래에 가상 화폐를 사용했다. 살인과 집단 성폭행을 모의한 정황도 드러났다. 그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을 매수하여 피해자의 신상을 얻어냈고, 협박하는 용도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여성을 대상으로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이루어진 성착취 범죄이다.
◇ 디지털상 성착취 범죄의 계속된 반복과 관대한 처벌
디지털상에서의 성착취 범죄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9년 만들어진 ‘소라넷’에서는 2016년 폐쇄되기까지 수많은 성착취 영상들이 공유되었고, 성폭행 모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가입자만 100만명에 이르렀다. ‘소라넷’이 폐쇄되고 나서도 범죄는 끝나지 않았다. 플랫폼만 바뀌어 동일한 형태로 성착취 범죄가 반복되었다. 급기야 2018년에는 성착취물을 산업화한 ‘양진호 웹하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금도 랜덤 채팅방을 매개로 성착취 범죄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처벌은 비교적 관대했다.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적 논의는 지속해서 이루어지지 못했다. ‘소라넷’은 운영진 단 1명만 처벌되었으며,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였던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씨는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아 이번 달 출소한다. 같은 사이트에서 영상을 내려받은 미국인을 미국법원이 신상을 공개하고, 징역 70개월을 선고하기로 결정한 것과는 대조된다. 텔레그램 상에서 이루어진 집단 성착취 범죄에 가담한 ‘와치맨’ 전씨는 지난해 검찰로부터 3년 6개월을 구형받았으나, 최근에야 검찰의 변론재개 신청으로 다시 재판을 받는다. 텔레그램 n번방을 처음 만든 ‘갓갓’에게 권한을 물려받아 운영한 ‘켈리’ 신씨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신씨는 이마저도 형향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한편, 2011년부터 5년간 서울 5개 법원에서 불법 촬영과 유포, 판매 등의 혐의로 기소된 1800여 건 중 ‘징역형’을 받은 비율은 단 5%에 불과했다. 관대한 처벌이 성착취 범죄가 반복되는 것을 방조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 대책 필요해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 관여한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도 중요하다. 이번 사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피해자들은 일상적으로 신상 공개에 대한 위협과 2차 가해에 노출되어 있다. 지난달 24일 언론노조는 피해자 보호를 위한 ‘n번방 보도 관련 긴급지침’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속보, 특종을 중시하는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가 계속되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지고 있다.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이루어질 우려가 있기에 법적인 도움이나, 조력자의 동석과 같은 방법도 강구되어야 한다. 경찰청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가 피해자 지원 대책을 발표했지만, 피해자를 돕고 있는 전문가들은 더욱 실효성 있는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피해자 지원 대책이 단기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 지원을 위한 기관이나 단체가 수도권에 몰려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예산 확보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이다. 피해자 지원을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이번 사건을 몇몇 개인의 일탈만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계속해서 비슷한 양상의 범죄가 일어나는 이유에 대한 구조적인 측면에서의 접근도 필요하다. 성착취 범죄를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미비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심각성을 느낄 수 있도록 처벌 정도를 강화해야 한다. 피해자를 돕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 또한 마련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민적 차원에서의 관심과 논의가 계속해서 이루어져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