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호] 미국 평화연구소 연구관 Elizabeth A. Cole 박사를 만나다 ― 화해를 전망하게 만드는 역사교육
발행: 2014. 5. 6.
Elizabeth A. Cole
-미국 평화연구소 및 제닝스 랜돌프 연구협력 프로그램의 시니어 프로그램 담당관
-전문 연구분야: 폭력적인 분쟁이나 정부 탄압 후에 따르는 장기적 화해와 인권 문제-역사, 교육 개혁
-카네기 윤리 및 국제 문제 협의회의 시니어 프로그램 담당관으로 근무
-Teaching the violent past : history education and reconciliation’논문 모음집의 엮은이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조지 워싱턴대에서 석사학위를, 스와스모어 칼리지에서 학사학위를 취득
분쟁을 겪었던 많은 나라들은 후에 이를 회복하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을 느낀다. 가해 국가에 대한 깊은 원망과 불신을 품고 살아가는 피해 국가뿐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기 힘들어 거짓말을 일삼곤 하는 가해 국가 역시 지난 사건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이미 일어났던 실제 사건임을 어쩌랴, 돌이킬 수도 없고 숨길 수도 없다. 세계 어떤 나라를 불문하고, 일단 특정 국가에 거주하는 이상 학생들은 그 나라의 역사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이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긍정적인 역사뿐만 아니라 지워버리고 싶은 악한 역사들 역시 지난 시간 속에 생생히 존재하는 것이며 각 나라들은 이 내용을 다루길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교육은 단순히 개인의 생각과 국가 이미지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분쟁 당사자들 간의 화해를 전망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행한다. 이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조망해 보기 위해, 폭력적인 분쟁이나 정부 탄압 후의 장기적 화해와 역사 교육에 대한 국제적인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미국 평화연구소의 연구원이자 지난 4월 30일 우리학교에 방문해 역사의식 함양 토론회 강연을 진행한 Elizabeth A. Cole 박사를 만나봤다.
“이전에 분쟁이 있었던 적대 세력이 더 이상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때, 적어도 그들이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화해가 이뤄집니다. 상대방이 더 이상 예전의 폭력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며, 양측 사이에 어느 정도 신뢰가 회복됐을 때 화해가 이뤄집니다.”
대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화해가 이뤄지기도 하나, 피해 국가가 가해 국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가해 국가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을 땐 실상 화해가 무척이나 어렵다. 이 경우, 감정적으로는 화해가 힘들더라도 가해 국가의 성격 변화나 시대 흐름의 영향을 받았을 때 제도적으로 화해가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 Cole박사는 대표적인 예로 제2차세계대전 직후의 독일을 들었다. 독일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완전하게 패배를 하고 난 뒤 들어선 새로운 정부는 잘못된 과거를 인정함으로써 이웃 주변 국가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여기에 도움을 줬던 시대적 여건은 유럽이 서로 통합하려는 분위기로 흘러갔다는 것인데, 자연히 여러 국가가 함께 협력하는 것이 화해의 조건이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독일이 자신의 과거를 부인하지 않았다는 점으로 교과 과정에 자신들의 과거를 받아들이고 피해 국가에 배상금을 지불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독일은 다른 국가들과 성공적인 화해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고 결국 독일 스스로의 경기회복에도 큰 도움이 됐다.
“‘화해’라는 것은 항상 여러 세대에 걸쳐 일어나는 장기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관계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지속되는 위안부 논쟁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Cole박사는 의외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일본의 태도가 양국 관계개선에 장애물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 충분히 긍정적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는 이유는 ‘젊은 층’의 한국인과 일본인들 사이에 많은 접촉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피해자였던 국가의 역사·문화를 가해 국가 측에서 존중을 해 준다는 것은 좋은 징조가 될 수 있다. 또한 지금 일본 정부, 주류 인사의 입장이 다수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으며 일부의 의견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충분히 한일관계가 발전할 가능성의 여지는 있으나 지금 당장 개선하기엔 벅찰 수 있으며 여러 세대에 걸친 장기적인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역사를 공부하는 건 과거에 실제 일어났던 사실에 대한 이해적 측면이 강하지만 역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견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명백한 증거가 존재하는 역사에 대해선 모든 사람들이 분명히 동의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상에 애착을 갖게 마련이다. 역사에 있어서도 개인은 인정하기 거북한 사실들을 무시하고픈 유혹을 떨쳐버리게 힘들며 특정 가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역사를 부정직하게 서술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각각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볼 때, 우리가 학생들에게 역사를 교육시킴에 있어 객관성에 가장 근접할 수 있으려면 학생들로 하여금 명백한 증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역사를 이해하되 항상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끔 해야 한다. 역사는 너무나 복잡하며 따라서 일대기에 대한 모든 구체적인 것들을 다 기술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에 대해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이미지를 나쁘게 인식할 수 있다고 해서 특정한 사건을 배제한 후 잘했던 일들만 가지고 이미지를 만들어간다면, 과거의 실수를 고치려는 노력의 시도도 없어질뿐더러 국수주의의 수렁이라는 위험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무조건 국가의 잘못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부각시켰을 때에도 문제점이 발생한다. 구소련 붕괴 직후의 러시아에서는 구소련의 역사를 완전히 거부하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이러한 극단적인 부정적 인식은 사회적인 위기로까지 봉착하게 됐다. 과거에 대한 불신이 심해지면서 애국심은커녕 국가관조차 제대로 정립될 수 없었던 이 시기는 ‘버려진 시기’라고까지 일컬어진다. 역사 교과서에서의 과거 서술에 있어 고려해봐야 할 많은 측면들이 있기 때문에, 교사나 교과서 제작자들은 항상 힘든 선택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롤랜드 블레이커와 황영주의 남북한 역사교육에 대한 연구가 보여주듯 저 또한 남한의 역사 교과서에서 북한을 덜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서 적어도 남한 학생들에게 북한 사람들이 우리랑 전혀 다른, 반대인 사람들만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켜 줄 수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은 각각 반공주의와 반자본주의라는 집단적 무의식에 갇혀 있다. 롤랜드 블레이커와 황영주의 연구에 따르면 각국의 역사 교과서를 분석해 본 결과 남한은 전쟁의 원인을 북한에게로, 북한은 전쟁의 원인을 남한에게로 돌리는 상이한 서술 행태를 보였다. 전적인 잘못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이러한 서술로 인해 각국의 학생들은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어. 잘못은 저기에 있어.’라는 민족주의적 망탈리테를 가지게 된다. 이어 ‘김일성은 항일 운동가였다’는 사실적인 서술마저 남한에선 큰 논란이 됐다. 분명히 남한의 사학자들은 김일성이 항일 운동을 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나 이 사실은 남한 교과서에서 배제되는 양상을 띠었다. 지금까지는 일각에서 생각하는대로 북한에게 여지를 주면 안 된다는 경직된 생각으로 인해 실제 사실에 대한 축소나 생략이 이뤄졌더라도, 앞으로 북한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사실을 교과서에 포함함으로 인해 남북한 간의 적대적 인식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교육 교수들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역사교사들에 의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때 물론 각각의 해석은 서로 다르더라도 어쨌든 역사적인 근거에 뒷받침된 해석이 될 것입니다. 그중에서 한 측면을 좀더 중점을 둬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것으로 비판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실제 교육현장에서의 문제에 대해 역사교육 교수들이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가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 해석을 곁들인다고 했을 때 그것이 적어도 역사적인 서술에 의해 어느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해석을 한다면 후에 비판을 받을 소지가 적을것이다. 교사가 자의적으로 역사를 해석할 때 파당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여지에 대해서 Cole박사는 “사실 교사라면 학생들에게 ‘역사적 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데 이 해석이 이 해석보다는 조금 더 맞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의 경우 어떨 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덧붙여 Cole박사는 교사는 단순히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알려주는 걸로 그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좀더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여지를 마련해 줘 결국 스스로 비판할 수 있게끔 하는 것에 역사교육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역사라는 것이 실제 우리 생활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흥미롭고 따라서 실질적인 것이지 전혀 현실과 괴리된 것이 아니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Cole박사는 강의 때 언급을 하지 못했다며 ‘Facing History and Ourselves'라는 단체를 소개했다. 여기에서는 교사 트레이닝에 대한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며, 그들 중 하나는 교실에서 서로 차이가 커 의견 불일치가 생길 수 있을 만한 의견을 굉장히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교실 환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나와 있다.
지금까지의 서술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결국 역사를 통해 과거 내가 속했던 국가가 겪은 사건과 분쟁을 이해했을 때, 장기적인 화해를 전망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역사교육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단지 역사를 과거의 사실적 측면으로써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토인비가 말했듯 "문명은 역사 속에서 반복된다"는 것을 주목했을 때 우리는 역사에서 과거와 현재는 물론이며 미래의 모습까지 관철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장이 마련됐을 때 역사 교육의 효용성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