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호] 보고서쓰기 어떻게 해야 할까?
코너 <박영민 교수의 맛있는 글쓰기, 말랑말랑 독서>
지난 호 글에서, 보고서를 쓸 때 예상독자의 기대, 요구, 목적 등을 분석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점, 이를 명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과제를 부여한 교수께 직접 여쭙는 것이 좋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예상독자와 관련된 중요한 방법을 충분히 다루지 못했으므로, 이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자.
보고서를 잘 쓰려면 과제로 부여되는 보고서마다 예상독자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한 학기 수강을 하다 보면 모든 강의에 보고서 쓰기 과제가 있는 일도 있다. 이 때 강의를 서로 다른 교수로부터 듣는다면 보고서는 예상독자의 변화를 고려하여 각각 다르게 작성해야 한다. 보고서는 예상독자의 기대, 요구 등을 고려해서 작성해야 하는데, 보고서의 예상독자가 다르므로 보고서도 이를 구분하여 작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유사한 주제라 하여 인터넷에서 돈 몇 푼을 주고 보고서를 구입하는 것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돈을 주고 산 보고서의 예상독자와, 지금 써야 하는 보고서의 예상독자가 다를 테니 말이다.
대학생들은 어떤 강의의 보고서이든, 어떠한 주제나 내용의 보고서이든, 항상 동일하게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만의 보고서 틀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긍정적인 점도 없지 않으나, 자칫 예상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보고서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 주의할 필요가 있다.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가 다른데도, 다시 말해 예상독자가 달라졌는데도 보고서를 동일한 방식으로 작성한다면 필자 중심의 보고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독자 중심의 보고서를 쓴다면 보고서는 동일하게 작성될 수 없다.
예상독자의 기대나 요구 등을 분석적으로 판단한 후에는 그것을 보고서에 잘 담아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좋은 보고서를 쓸 수 있는데, 문제는 이것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한데, 글쓰기 연구자들은 이를 위해서 주위의 동료를 ‘실제적인’ 예상독자로 활용할 것을 권한다. 주위의 동료를 자신이 쓰고 있는 보고서의 실제적인 예상독자로 초대하면 이 어려움을 효과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료뿐 아니라 선배나 후배여도 좋다. 보고서를 쓸 때 동료를 예상독자로 초대하여 보고서의 내용, 구성, 표현 등을 들려주고 비평이나 조언을 듣는 것이다. 이 비평이나 조언을 통해서 예상독자의 기대, 요구, 목적 등이 잘 반영되었는지를 판단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 초안을 완성한 후에 동료를 초대하여 비평이나 조언을 들을 수도 있고, 보고서를 쓰기 전에 계획을 들려주고 조언을 구할 수도 있겠다. 호혜의 원칙에 따라 서로가 상대의 예상독자가 되어주면 더욱 좋다.
1990년대에 밀리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국민을 답사객으로 불러냈던 유홍준 교수는 이러한 방법을 일찍부터 적용했던 글쓰기의 달인이다. 지면이 짧지만,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해서 들어보기로 하자. “글쟁이를 업으로 삼은 것은 아니지만 논문, 비평문, 해설문, 잡문에 답사기까지 식성껏 글을 써오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몇 가지 글버릇이 생겼다. 고백하건대 반드시 만년필이어야 하고, 원고지는 나의 전용 1천자 원고지여야 하며, 구상은 밤에 엎드려 하고, 글은 낮에 책상에 앉아서 쓰며, 먼저 제목을 정해야 쓰기 시작하고, 첫 장에서 끝장까지 단숨에 써야 되는데 글 쓰는 동안 점심, 저녁도 무드 깨질까봐 대충 때운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약한 버릇인데 그런 중 더욱 괴이한 버릇은 글쓰기에 앞서 반드시 이야기로 리허설을 하는 것이다. 이 때는 스파링 파트너를 잘 만나야 도움이 되므로 글에 따라 적당한 상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나로서는 큰 일거리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 2>, 153~154면)
여기에서 말하는 ‘스파링 파트너’, ‘적당한 상대’가 바로 글을 쓰기에 앞서 먼저 초대한 예상독자라고 할 수 있겠는데, 유홍준 교수는 이들의 반응(비평 및 조언까지를 포함하여)을 통해 예상독자의 기대, 요구, 관심 등을 파악하고, 그들의 기대나 요구가 글에 잘 반영되었는지를 알아보는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실제적인 예상독자의 이러한 반응은 글의 내용과 형식을 계획하고 수정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사실, 학생들이 제출한 보고서에 교수들이 붙이는 ‘코멘트’도 일종의 예상독자의 반응이므로, 그러한 ‘코멘트’를 마음속에 새겨두면 다음번에는 개선된 보고설르 작성할 수 있다.
불특정 다수를 위해 글을 써야 했던 유홍준 교수는 ‘적당한 상대’를 고르는 것이 큰일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강의 과제로 보고서를 쓰는 우리 대학 학생들은 그리 큰일이 아니다. 바로 경험을 같이 하는 동료나 선‧후배를 예상독자로 초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면, ‘내 글’에 잘 협조해 줄 수 있는 ‘적당한 스파링 파트너’를 정해서 도움을 청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