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호]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담겨진 문화유산

코너 <송호정교수의 박물관은 살아있다>

2019-01-01     송호정(역사교육) 교수

필자가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봄날 저녁, 누전으로 인해 학교 본관 건물이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다. 마을 사람 모두 학교 운동장에 모여 치솟는 불길을 안타까워하던 차에 불구덩이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어떤 분이 계셨다. 필자의 아버님이셨다. 필자가 다니던 학교의 선생님이셨던 아버님은 꼭 꺼내올 물건이 있으셨는지 불타고 있는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셨다. 얼마가 지났을까. 아버님은 당시 향토자료관에 전시되었던 유물들을 품에 안고 나오셨다. 물론 꺼내온 유물(청동검, 고려 동경 등)은 대부분 불에 맞아 그을리거나 녹아내린 것들이었다. 다행히도 청동 유물 하나가 온전하게 불길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훗날 알게 되었다. 이 유물은 지금 교육박물관 한국교육사실Ⅰ에 전시되어 있다. 나머지 불에 탄 유물들도 교육테마실에 전시되어 있다.
훗날 아버님으로부터 들은 바로는 청동거울은 아침마다 산책을 하던 고향 마을 뒷산에서 수습하신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조각 하나를 우연히 발견하였는데, 다음날 학생들과 함께 주변을 뒤져 나머지 조각들을 찾아냈다고 한다. 이른바 전라북도 익산 출토 청동기시대 거친무늬 거울인데, 동아시아 청동기 고고학을 전공한 필자의 눈으로 보면 기원전 9세기에서 기원전 8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유사한 것을 보지 못했다.
몇 년 전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님께서 박물관에 기증하거나 팔라고 하셨지만 필자는 여러 이유로 거절하고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가 교육박물관에 전시하게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갔으면 무조건 전시될 국보급 유물이다.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시는 일본 고고학계의 권위자 니시타니 교수가 일본의 저명한 고고학 잡지에 소개하기도 하였다.
한국교육사실Ⅰ 한쪽을 차지한 이 거울은 어떤 교육적 의미가 있을까? 청동 거울은 청동기시대 지배자의 권위의 상징물이자 종교적 제의가 펼쳐질 때 가슴에 부착하거나 손에 쥐고 사용하던 물건이다. 이는 청동기시대 지배자가 자신이 부리던 백성들에게 공동체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일체감을 느끼게 하고 무언가 메시지(의식의 절체나 무용, 주문 등)를 전달하고자 할 때 사용하던 물건이다. 우리 교육박물관의 성격에 잘 들어맞는 유물이라 생각한다.
다만 당시는 청동기가 워낙 귀했기 때문에 많은 지배자들은 청동 거울이나 검 대신 돌로 만든 검도 많이 차고 다녔던 것 같다. 우리 학교 박물관에서 20여 년 전에 조사한 청원 비중리 돌널무덤(지금 도서관 앞 야외에 전시되어 있음)에서 출토된 돌칼도 같은 기능을 하던 것이다.
그러면 청동기시대보다 이른 선사시대에는 과연 교육이라고 불릴만한 것이 있었을까? 이 시기에는 수렵활동이나 농사짓는 방법 등이 부모에서 자식으로,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 간에 공유되었다. 반달돌칼을 통해서는 곡식을 수확하는 방법이, 어망추로는 그물로 고기 잡는 방법이, 가락바퀴로는 실을 뽑아내는 기술이 전수 교육되었다. 말 그대로 생존과 직결된 내용이 이 시기의 교육이었던 것이다.
고조선 이래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고대 국가가 세워지게 된다. 이제 각 나라들은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각종 교육을 국가가 직접 나서서 주관하고자 노력하였다.
고구려에서 귀족 자제들은 태학에서 공부하였고, 시골 일반 백성의 미혼 자제들은 일종의 사립학교인 경당에 모여 경서를 암송하고 활쏘기도 익혔다고 한다. 궁벽진 시골에서도 글 읽는 소리가 자자하게 들렸다니 고대부터 자식들 교육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던 것 같다.
고대 백제의 땅, 인천의 계양산성에서는 책의 내용을 쓴 목간이 출토되었다. 당시 백제인들은 중국으로부터 선진 학문의 내용을 받아들여 상당히 수준 높은 교육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귀족 자제들이 모여 수련을 하며 이상세계 건설을 위해 노력하던 신라의 화랑도에서는 기본적으로 승려나 유학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교육을 통해 사회를 이끌어갈 지식을 배웠다. 두 화랑이 만나 시경과 서경, 예기를 읽기로 맹세한 내용의 임신서기석. 이러한 노력과 공부가 있었기에 화랑들은 이후에 삼국을 통일하는 주역으로 성장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 오면 국학을 두어 관리양성을 위해 논어와 효경 등 각종 고전 내용을 기초 소양 교육으로 가르쳤다.
나는 제1전시실을 찾은 관람객들이 위에서 언급한 전시 유물 속에서 선사시대의 공동체 교육에서 고대의 학교 교육으로 변하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읽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