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호] 열정이 열병이 안 되려면
코너 <청춘, 경계를 뛰어넘다>
젊은이들이 딱하다며 기성세대들은 서투르게 위로하려하거나 개념이 없다고 섣부르게 빈정대지만, 사실 젊은이들은 그들에게 대꾸할 짬조차 없습니다. 등록금 마련하느라 몇 탕씩 알바를 뛰고, 학점에 영어점수에 인턴경험에 자격증에 공모전에 친구관리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지요. 거기다 이제는 여행과 연애까지 하나의 스펙이 되어버린 시대라 의무처럼 여행을 가고 남들에게 티내기 위해 연애를 하는 지경입니다. 더군다나 예능프로와 오락영화를 안 보면 왠지 불쌍한 느낌이 들고, 유행에 따라 옷을 사지 않으면 뭔가 뒤처지는 기분에 빠지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이 모든 걸 다 해내느라!
달리 말해 이 시대 젊은이들은 단군 이래 ‘가장 바쁜 세대’입니다. 어느 누가 청춘에게 무식하다거나 열정이 없다고 하는지요? 한국의 젊은이들은 세계 그 누구보다 더 뜨겁게 뭔가를 하며 달뜨게 살고 있습니다. 물론 빈둥대는 이들이 어디에나 있겠지만, 옛날과 달리 요즘엔 조금이라도 느긋할라치면 자기 스스로 안절부절못하면서 몸소 등허리에 채찍질을 하게끔 사회가 짜여있기 때문에 젊은이들 마음엔 쉼표가 없지요. 젊은이들은 어떤 과녁을 꿰뚫고나 정신없이 청춘을 날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리송합니다. 다들 ‘열정’이 끓다 못해 넘쳐흐르는데 정작 흐뭇하게 사는 사람은 왜 그리 드물까요? ‘열정’이 하나의 강박처럼 사람들 사이를 맴돌기 때문에 너도 나도 ‘열정타령’을 하지만, 이 열정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치 열정이 없으면 죄인이 되는 거 같은 분위기라 죄다 열정 있는 척을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정말로 좋아서 하는 걸까요? 청춘은 정열이 있어야 한다고 덮어놓고 왁자지껄한데, 오히려 젊은이들이 열정 자체에 갸우뚱하며 고민을 해야 하는 때입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열정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대수로운 건 열정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열정이냐입니다. 치맛바람 날리는 아줌마들이나 룸살롱에 가서 뒹구는 아저씨들은 열정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겠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손뼉을 쳐주진 않습니다. 그들에게 열정이 있지만 그 열정이 바람직한 열정이라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이 ‘성공’을 위해 빡세게 내달린다고 예뻐 보이지 않습니다. 남들 다 하는 걸 따라하는 건 ‘열정’이 아니라 ‘열병’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우르르 다들 하니까 몸이 달아 부랴부랴 하는 건 덩달아 열병에 걸린 꼴입니다.
따라서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열정에 자기 삶을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글거림을 다스리며 이끄는 깜냥입니다. 그래서 고민을 해야죠. 고민을 머금은 용기와 슬기 그리고 끈기라는 땔감들을 만날 때, 비로소 열정은 활활 불타오를 수 있습니다. 내 삶의 주인으로서 자유롭게 찐덥게 살고자 할 때 ‘진짜’ 홧홧할 수 있습니다.
고민을 하면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삶은 푸석푸석해집니다. 세상이 시키는 걸 하고 남들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살아가는 이는 바삐 살지만 언제나 덧없음과 허전함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내 삶이 남들의 콧김대로 헐레벌떡 허둥지둥 끌려가니까요. 열심히 살아도 전혀 행복하지 않게 됩니다.
요새 젊은이들 대개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듯 살아왔으며 가슴 뻐근하게 고민하고 움직이지 않는 이상 가던 길을 그대로 쭉 가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대부분은 자신이 바라지 않더라도 어느새 머릿속은 굳어가고 감성은 보수화됩니다. 어떤 변화도 탐탁해하지 않으면서 해왔던 대로 살게 되고 하루하루 흘려보내게 되죠. 그렇게 삭습니다. 웃음기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기성세대의 메마른 얼굴들은 말없이 많은 걸 말해줍니다.
청춘이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청춘은 나는 누구인지, 사랑이란 무엇인지, 세상은 왜 말썽인지, 인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절절하게 묻고 쩔쩔매며 고민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얼핏 봐선 속 시원하게 답이 안 나오는 질문들이지만 그렇다고 사라지지도 않는 궁금증을 되짚고 따지면서 삶의 줏대를 튼튼하게 세우는 때가 청춘입니다. 그래서 청춘들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야 합니다. 내 삶을 빙빙 맴도는 니 물음들을 암팡지게 물고 늘어져야죠. 그때 내 삶은 조금씩 달라지고 생각의 알통들은 탄탄해집니다. 이 고민 속에서 나오는 ‘열정’을 품을 때, 미래가 바뀝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월이 지나간다고 푸념한다면, 늘 빡빡하지만 땅거미가 질 무렵 가슴 한 구석이 쓸쓸하고 헛헛하다면, ‘내 삶의 방향’을 돌아보라는 신호입니다. 뭔가 이상한 걸 느꼈을 때 얼른 고치지 않으면 나중에 손댈 수 없이 아프듯, 내 눈빛이 초롱초롱하지 않다면 자기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니라‘ 고민하니까 청춘이다’입니다. 고민하지 않으면 청춘이 아닙니다. 고민의 깊이와 크기가 내 앞날을 결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