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호] 밑줄을 어떻게 그어야 할까?
코너 <박영민 교수의 맛있는 글쓰기, 말랑말랑 독서>-책 읽기의 방법
무더위와 한더위가 대단했던 지난 여름방학 때 우리 대학 학생들도 독서라는 것을 제법 많이 했을 텐데 어떠한 방법으로 했을지 자못 궁금하다. 깊이 있는 사유를 위해 손톱을 깨물며 정독을 즐겼던 사람도 있었겠고, 양적 증대가 질적 도약을 이룬다는 변증적 논리를 증명하듯 다독을 즐겼던 사람도 있었을 법하다.
경계를 넘나드는 지적 모험을 위해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낸 잡독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 밑줄을 그으며 읽어낸 책이 있었는가? 성실한 독자라면 밑줄 긋기를 빠뜨렸을 리가 없었을 텐데, 바로 이 밑줄 긋기가 이번 호에서 다룰 독서의 방법이다. 밑줄 긋기는 초등학생 때부터 해 오던 것이라 우리 대학 학생 중에는 이것이 어떻게 대학생들이 배워야 할 독서의 방법이 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단순한 데에 진리가 숨어 있듯이, 이 밑줄 긋기에 독서의 중요한 원리가 숨어 있으니 찬찬히 그 방법을 같이 탐구해 보기로 하자. 사실, 밑줄 긋기 방법, 이것 하나만을 올바로 깨우쳐도 독서를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유능한 독자가 될 수 있다.
밑줄 긋기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메모하기와 함께 글의 주요 내용을 파악하는 데 기여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주요 내용의 파악뿐만 아니라 주요 내용을 기억하는 데에도, 그리고 그 내용을 찾아내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 책을 펼쳤을 때, 잘 그어져 있는 밑줄을 발견한다면 그것을 단서로 해서 글의 내용을 생생하게 되살려낼 수 있다. 그 책에서 필요한 내용을 찾을 때에도 밑줄을 단서로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밑줄 긋기는 좋은 요약문을 쓰는 데 꼭 필요한 중요한 독서 방법이다. 우리 대학에서는 요약문 작성도 흔히 부여되는 과제 중의 하나인데, 과제로 부여되는 이 요약문을 잘 쓰려면 글의 주요 내용을 파악하고 기억하고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독서의 방법, 즉 밑줄 긋기의 올바른 방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
평균적인 독자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밑줄을 긋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떠한 방법으로 밑줄을 긋고 있는지 떠올려 보면 좋겠다.
평균적인 독자는 책을 펼치고 눈으로 글을 읽어가면서 중요하다 싶은 단어, 구절, 문장 등을 발견하면 처음에는 연필로 ‘흐릿하게’ 밑줄을 긋기 시작한다. 읽기를 시작한 초반에는 연필로 흐릿하게 밑줄을 긋지만, 글이 진행되어감에 따라 중요한 내용이 더 많이 나오면서 점점 더 밑줄이 진해진다. 어떤 경우에는 두 줄로 된 밑줄을 긋기도 하고, 밑줄이 많아 구별하기 힘들어지면 형광펜이나 색깔이 들어있는 펜을 동원한다. 읽는 글이 주장과 반론과 재반론을 포함하고 있다면 형형색색의 밑줄이 난무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평균적인 독자의 밑줄은 글 초반부에는 양이 적고 진하지 않지만 후반부에는 양도 많아지고 진해진다. 이 평균적인 독자의 밑줄 긋기는 두 가지 점에서 오류가 있다. 하나는 글을 읽어가면서 밑줄을 그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요한 내용을 구별하기 어렵게 밑줄을 그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평균적인 독자처럼 글을 ‘읽어 가면서’ 밑줄을 긋지만, 밑줄을 긋는 올바른 방법은 글을 모두 ‘읽고 난 후에’ 하는 것이다. 밑줄은 글의 주요 내용에 그어야 하는데, 글을 읽는 도중에는 그 정보가 주요 내용인지 아닌지, 중요도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없으므로 밑줄을 효과적이면서도 적확하게 그을 수 없다. 평균적인 독자가 글을 읽을수록 밑줄을 더욱 더 복잡하게 그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읽는 도중에는 내용의 중요도를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글을 모두 읽은 뒤에 주요 내용을 선별하고 판단해서 밑줄을 그었다면 여러 가지 형태의 밑줄, 형형색색의 밑줄을 동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한 번에 하나의 밑줄만으로도 주요 내용에 정확하게 밑줄을 그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밑줄은 읽은 글의 주요 내용을 효과적으로 파악하고 기억하고 찾는 데에 도움을 주는 장치이다. 그런데 평균적인 독자가 했던 것처럼 밑줄이 복잡하면 밑줄 긋기의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책을 넘겨봐도 밑줄이 많아 무엇이 중요한 내용인지, 무엇이 찾는 내용인지를 가려내기 어렵다면 밑줄을 긋지 않는 것보다도 못하다. 미숙한 독자들은 글자들을 덮어버릴 정도의 밑줄을 긋기도 하는데, 이런 밑줄을 통해서는 밑줄 긋기가 주는 어떠한 효과도 얻기 어렵다. 어떤 경우에는 그러한 밑줄이 오히려 재독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요약문을 잘 쓰고자 한다면, 그리고 글의 주요 내용을 효과적으로 파악하고 기억하고 발견하고자 한다면 밑줄을 긋는 연습을 새롭게 해 보자. 글을 읽는 도중이 아니라, 글을 읽고 난 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