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호] 생활관 스캔들
최근 기숙사에서 여러 가지 황당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율곡관에서는 소화기를 복도에 뿌려놓고 가거나 다른 호실에 들어가 노트북에 물을 뿌리고 나가는 등의 행태가 이어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관에서 도난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몇몇 사건에는 경찰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일은 비단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대 부분의 학우들이 사도의 교육과정을 밟고 있는 우리학교에서 이러한 일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이러한 기숙사 생활범죄가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공공의식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기숙사 생활에서 생기는 이러한 공공의식 부재는 예로부터 경계되어 왔는데, 이는 우리학교와 상황이 비슷한 조선시대의 성균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성균관에 입학한 유생들은 강당 좌우의 동재와 서재에 기거하였다. 재에서의 유생들의 생활은 규칙이 엄격하였고, 이 규칙은 유생들의 자치활동에 의하여 운영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자치활동의 기저에는 유생들의 자치기구인 재회가 있었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태학지’에 의하면 이러한 재회의 임원으로는 회장격인 장의를 비롯하여 색장, 조사, 당장 등이 있었다고 한 다. 또한 유생들은 자체의 내부적인 문제는 재회를 통해서 자치적으로 해결하였다. 유생들의 자치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때로는 대외적인 문제를 대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주로 조정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시정요구나 선대의 유학자들에 대한 문묘배향 요구, 이단에 대한 배척요구 등을 이유로 재회를 열어 상소를 올렸으며, 이러한 주장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에는 집단시위나 수업거부 또는 동맹휴학 등으로 조정에 맞섰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들은 현대의 대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특히 생활관 자치회가 존재하며 대부분의 학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한다는 점은 우리 학교 학우들의 기숙사 생활과 당시 성균관 유생들의 생 활이 크게 차이가 없는 것을 말해준다. 오히려 기숙사에 함께 생활하면서 내적으로는 서로간의 윤리의식을 제고하며 외적으로 정치적, 사회적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성균관 유생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실태를 볼 때 더욱 선진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시대는 바뀌었고 물질적 진보는 이루었으나 아직도 우리는 이렇게 500년 전 성균관에서의 윤리의식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진부하다고 생각되는 강상의 도를 더 이상 강요하지는 않으나 이 좁은 공간에서의 공공윤리조차 살아남지 못하고 있는 실정은 상당히 애석한 부분이다. 스스로 생활 수칙을 정하고 이를 자체적인 정화를 통해 엄격히 지켜나가는 성균관의 생활 자치는 가히 오늘날 우리 학우들의 생활에 온고지신이 될 만하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도교육원에 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고 있지만 기숙사 내에서 이런 식의 생활범죄가 끊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요구는 무책임한 응석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자유를 요구하는 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뒤에야 진정한 생활관 자치는 실현될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기숙사 생활에서 공공의식의 부재를 언제까지나 단순히 몇몇 학우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좀 더 이 문제를 넓게 본다면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한 공공의식 과 배려는 당연히 필요하며, 나아가 정의사회 구현의 기초 단계로서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자체적으로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즉 단순히 이러한 문제가 기숙사 내부의 일이 아니라 이것이 전사회적인 문제로 확대될 수 있고, 공공윤리를 보편화하는 교육과 이를 담당하는 교원양성에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의 길을 걷는 우리들 이 이러한 기본적인 윤리의식 함양에 부족함을 보이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교사의 윤리적 도태는 학생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며 이것이 곧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도벽으로 치부하기에 우리가 가진 위치는 이를 용납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이러한 사건들의 희생자들이 가진 개인적인 분노나 원한에 공감하는 것을 떠나서 지금은 교원대 사회 내부에서의 공공윤리의식에 대한 제고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