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호] 현명함을 모으는 곳, 그 곳에서 배운 '분노'
며칠 전에 서울시장 선거가 있었다. 야권의 박원순 후보와 여당인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가 서울시장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다툰 끝 에 결국 민심(民心)에 따라 박원순 후보가 서울 시장에 당선되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보궐 선거가 있었지만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겸허히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던 나경원 후보 측은 1억원 피부 관리를 받았다는 의혹이 일자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나는 꼼수다’를 걸고 넘어졌다. 또한 한나라당의 홍준표 대표는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기 때문에 이번 선거를 실패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고 선거 기간 내내 후보들은 서로를 끌어내리려는 네거티브 공세를 취하였다. 하지만 나는 서울시민 들이 나경원 후보가 1억 원짜리 피부 관리를 받았다는 사실보다는 그 후보가 내세운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에 뽑아주지 않 았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여전히 전라도 지역에서는 민주당이 우세하고 경상도 지역에서는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두는 뿌리 깊은 ‘지역주의’가 사라지지 않은 현실을 보고도, 자신들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건진 데에 안도 하였던 여당의 대표가 과연 이성을 갖춘 사람인지 의심스럽다.
독서클럽‘집현전’은 역사교육과의 여러 학우들이 참여하는 독서 모임이다. 집현전(集賢 殿)은 현명함을 모으는 곳이라는 뜻이다. 집현 전에서 처음으로 읽고 토론해 본 책은 역사 교육과 교수님이 쓰신『역사에 비친 우리의 초상』이었다. 이 책은 한겨레신문에 연재하신‘조한욱의 서양사람(史覽)’이라는 칼럼의 원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은 사회 도처에 존재하는 야만에 대해 폭로한다. 사회에서 권력과 부를 가진 자, 소 위‘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헛된‘욕심’갖는다. 이러한 욕심으로 남을 속이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며 그 결과로 차 별이 발생한다.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변덕을 부려 쉽게 배신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결과적으로 일반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친다. 나경원 후보가 내세운 정책에는 분명 이런‘야만’이 존재했고 이 것이 국민들에게 피해를 줄 것임을 서울 시민 들은 알고 있었다. 또한 이번 선거 결과를 실패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홍준표 대표의 발언은 우리 사회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눈앞의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한 또 하나의 야만이다.
그러나 여기에 심각한 야만이 하나 더 존재한다. 탐욕으로 인한 강압과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고 위선과 기만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우리들의‘몽매’이다. 우리는‘어느 후보나 다 똑같으니 투표할 필요가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것은 분명하고도 아주 심각 한 몽매이다. 감히 알려고 하는 용기는 커녕 사실을 아는 것을 귀찮아하고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값진 권리인‘한 표를 행사’하는 것을 결코 하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해 저자는 우리에게‘감히 알려고 하라(Sapere aude). 그리고 분노하라!’라고 말한다.‘감히 알려고 하라.’는 말은 우리의 올바른 정신을 이용하여 참된 지식과 중요한 정보를 은폐시키려는 지배자들에 맞서 용기를 갖고 알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분노를 표출해야 할까? 날치기로 예산을 통과시키고 언론을 통제하여 국 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공권력을 남용하여 힘 없는 서민들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분노해야 할까?
‘분노’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각자 가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면 된다. 감히 알려고 하는 용기를 갖고 사회 도처에 깔려 있는 야만들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분노하며 투표장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사회 전체를 위해 일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한 표를 행사하면 된다. 현실이 아무리 모순되고 힘들어도 우리가 한 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다음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 시장 선거의 투표율은 48%를 기록했다. 언론에서는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높았다고 보도했지만 이런 보도를 보고 화가 나기도했다. 생각해보면 2명 중에 한 명은 투표를 하지 않았다. 다수결로 결정하는 일에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여야 최대한 올바른 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 선거에 참여하도록 독려해야 하는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 한 것을 인증 하는 사진을 올리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했고 한나라당은 낮 시간에 투표율이 저조해지자 안심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고 자신들만의 이익을 내세우지 않았다면 이런 행동을 할 리 만무하다.
‘집현전’에서 첫 책을 읽고 토론한 후, 무엇인가를 아는 것을 귀찮아했던 기억을 떠올리 며마음 속 깊이 반성하였다. 감히 알려고 하는 용기를 갖고 결국 알게 된다면 우리는 투표장에 가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내년 선거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