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호/조준현의 경제백신] 더불어 사는 자본주의

2018-10-13     조준현(부산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그리스와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 미국의 경기침체 등 요즘 세계경제는 악재에 악재가 겹치는 형국이다.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다. 애당초 정부는 5%의 성장률을 목표로 했으나 최근 들어 4% 선으로 목표를 하향조정하였다. 국제통화기금(IMF)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이마저도 실현이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최근의 세계경제를 감안한다면 사실은 4%라는 성장률도 그다지 나쁜 실적은 아니다. 오히려 경제개발 협력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서도 상위권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이른바 ‘체감 경기’는 왜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을까? 성장률이 몇%냐가 문제가 아니라, 성장의 과실이 어떻게 분배되느냐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인 삼성전자의 2010년 매출액은 154조 6300억원, 영업이익은 17조 3000억원이다. 달러로 환산하면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약 1370억 달러로 HP 1260억 달러, IBM 999억 달러, 애플 652억 달러, 인텔 436억 달러 등 세계 IT산업을 지배하는 다국적기업들보다 많다. 상위 10대 그룹이 우리나라의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75%를 넘는다. 이런 영업실적에 힘입어 2010년 말 삼성전자가 가진 현금성 자산은 12조원을 넘어섰으며, 현대차그룹의 현금성 자산도 8조 6000억원을 넘는다. 모두 한 해 사이에 두 배가 넘게 증가한 액수이다. 그러나 이처럼 한편에서 대기업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을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한 해에만 80만~100만개의 영세자영업자들이 도산하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래서 경제지표에는 봄바람이 부는데, 우리가 느끼는 체감 경기는 한겨울인 것이다.
 최근 들어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주장하면서 중소기업 지정업종을 지정한 데 대해 대기업들의 반발이 많아 진통을 겪고 있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특정 업종을 지정하여 규제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과연 정부의 규제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의심스러운 업종도 있고, 정말 규제의 효과가 있을는지 의심스러운 부분도 많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자면 정부의 정책이 이렇게 그때그때 문제가 터지면 즉자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의 참된 할 일은 당연히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들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경제환경을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장원리를 함부로 입에 올리는 분들의 주장도 잘못되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이나 보수언론, 그리고 일부 경제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시장이다. 시장에 맡기라거나 시장원리를 지키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먼저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대기업들이 먼저 시장질서를 존중하고 지키지 않으면서 시장경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삼성, 현대, SK를 비롯한 14개 그룹이 지난 5년간 3회 넘게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 이상의 조치를 받았다. 대기업들의 높은 실적은 중소기업들에 대한 부당한 착취에서 나온 부분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대기업이나 언론들이 그것을 시장원리니 공정경쟁이니 하는 말로 호도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다.
 대기업들은 높은 경영실적이 모두 기업들 자신이 경영을 잘한 덕분인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현금성 자산이 급증한 데에는 현정부 들어 실시된 감세 정책의 덕분이 크다. 수출 부문의 호황도 정부가 고환율 정책을 유지한 덕분이 크다. 하지만 그 때문에 외국으로부터 원자재를 사 와야 하는 중소기업들은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도 마찬가지지만, 정부의 정책은 모든 집단에 똑같이 작용하지 않는다. 어떤 집단은 같은 정책으로부터 이익을 보는 반면 다른 집단은 같은 정책으로부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책으로 이익을 본 집단은 당연히 손실을 입은 집단에 보상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중 특히 제조업의 경우는 65%가 대기업과의 하도급 거래관계에 있으며, 전체 매출액의 50% 정도가 하도급 거래에서 발생한다. 한 마디로 중소기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것이 대기업이다. 그러나 이는 거꾸로 말하면 중소기업의 기반이 없이는 대기업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중소기업들에 필요한 것은 떡 하나 더 준다는 식의 시혜가 아니라 그들이 받아야 할 정당한 대가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그것을 제대로 지켜 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