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호] 점토판에서 태블릿 PC까지
TV를 시청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Apple의 태블릿 PC 광고 카피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 문구가 적용되기는 힘들겠지만, 우리나라 정도의 여건이라면 머지않아 누구든 태블릿 PC를 사용해서 공부하는 날이 올 것이다. 마치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개인용 컴퓨터를 가지고 동영상 강의를 듣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현대의 전자제품들이 학습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은 학습의 기본적인 요건, '듣기·말하기',‘읽기·쓰기’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특히‘읽기’와‘쓰기’는 가장 필수적인 요건이다. 그렇다면 먼 옛 날 도구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무엇으로 공부하였을까?
인류 최초의 교과서이자 연습장은 바로‘흙’이었다. 수메르 문명의 발굴·조사에 의하면 기원전 3000년경부터 수메르 인들은 점토판을 제작하였으며, 기원전 2,500년 경에 이르면 수메르 전역의 학교에서 점토판을 사용하였다고 한다.‘노아’의 고향이라고 알려진 고대 슈루파크에서 상당한 분량의‘점토판 교과서들이 발굴된 것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기원전 2,000년경의 수메르 교사가 남긴 고대의 에세이에는 실 제로 점토판을 사용해서 어떻게 학습했는지 잘 나타나 있다.
“저는 저의 점토판을 암송하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준비해운 새 점토판에 필기를 하고 그것을 끝냈습니다. 그런 뒤 선생님들은 저에게 구두과 제를 주었고, 오후에는 필기과제를 주 었습니다.... (다음날) 선생님은‘필기가 엉망이군.’이라고 말하며 매를 때렸습니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널리 사용된 연습장 역시‘흙’이었다. 흔히 ‘나무’를 원료로 한‘죽간竹簡(대나무 마 디를 엮은 것)’이나‘종이’,‘비단'이 널리 쓰여졌다고 생각하지만, 죽간은 종이가 발명된 이후로는 점차 사라졌고 예나 지금이 나 비단은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중요한 기록을 전달·보관하는 데에만 사용하였다. 종이 역시 연습장으로 널리 사용된 것은 불과 수십 년 전의 일이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쓰기 연습을 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은‘사판沙板’이다. 사판은 적당한 크기의 나무틀에다 고 운 모래나 흙을 깔고 손가락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글씨 연습을 할 때 쓰던 기구이다. 장이모우 감독의 2002년 작인‘영웅’에는 기원전 3세기 경, 학교에서 학생들이 사판 을 가지고 서예 연습을 하는 장면이 잘 연출되어 있다. 우리 교육박물관에도 사판이외에 다양한 옛 학습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한국교육사실 1’전시실에는 조선시대의 학습도구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우선 글씨 를 연습하던 도구로 서판書板(글씨를 쓸 때 종이 밑에 바치는 널조각), 분판粉板이 있다. 이 중 분판은 조선시대 아동들이 붓 글씨를 연습할 때 널리 사용된 것으로 네모난 널판 표면에 분을 발라 사용하였다. 분판은 글씨 연습을 하고 나면, 물걸레로 지우고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한편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서산 書算이라는 도구도 조선시대에 널리 쓰였다. 서산은 책을 읽은 횟수를 세던 물건이다. 좁다란 종이를 봉투처럼 접고 겉에 눈 금을 내어 이를 접었다 폈다하며 책을 읽은 횟수를 헤아렸다. 서산은 책장 사이에 꽂으면 책갈피가 되기도 했으며, 서당의 꼬마에서부터 궁중의 궁녀와 양반, 왕족까 지 각계각층이 두루 사용하던 도구이다. 이는 경전을 여러 번 반복해서 크게 소리 내어 읽던 학습방법 때문에 필수적인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외에도 전시실에서 조선시대 양반들의 휴대용 학습도구를 찾아보는 것도 우리들 에게 소소한 재미를 준다. 언제라도 글씨 를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다니던 휴대용 먹물통, 현대의 문고본과 비슷한 크기로 작게 만들어진 휴대용 책 등 다양한 휴대용 학습도구가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옛 학습도구들을 관람하고 있노라면 옛 조상들의 노력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아울러‘아무리 기술이 발전하여도 역시 공부는 직접 쓰고, 읽는 것이 최선이자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독자들도 교육박물관의 전시실을 관람하고 자신만의 여러 감흥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