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호] 포스트-포디즘 비즈니스
(下) 포스트-포디즘과 한국 산업경제의 과제
<지난 호에서 이어짐>
‘네이버 지식사전’에 따르면, 포스트-포디즘은 “미숙련 노동자를 투입하여 표준화된 제품을 생산했던 예전의 경직된 대량 생산 라인에서 벗어나, 시장의 변화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범용 기계와 숙련 노동자들로 구성되는 혁신적인 생산 체제를 일컫는다. 분업을 최소화시켜 직무를 수평적·수직적으로 통합하고, 권위주의적인 수직적 의사 결정 구조를 수평적으로 전환하며, 노동자들에게는 직무에 대한 폭넓은 자율권을 보장하는 등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보다 인간적인 작업 환경을 마련하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포스트-포디즘적 생산 방식에서는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창조적 능력이 중요하다. 포스트-포디즘적 생산방식에서 노동자는 단순한 부속품이 아니라 제품의 경쟁력과 특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다. 비단 앞에서 밝힌 벤츠 자동차와 같은 제조업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업종이나, 앞으로의 사회에서 중요한 산업이 될 정보기술(IT), 생명기술(BT), 문화 및 컨텐츠 산업, 그린 비즈니스 등에서는 모두 포디즘이 아닌 포스트-포디즘이 지배적 원리로서 적용될 것이다.
한편 포스트-포디즘을 각국의 경제 구조적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진 경제권의 포스트-포디즘 경제 모델은 크게 제조업을 고도화시킨 모델과 서비스, 금융, 문화 산업 및 첨단 산업이 중심이 된 모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조업을 고도화시킨 포스트-포디즘 경제 모델은 일본, 독일, 스위스, 북부 이탈리아 등이 있다. 정밀 기계, 보석 세공, 고급 의류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 사이에서 탄력적인 노동자 배치와 기술 이용의 관습이 생겨나 점차 산업 전반으로 퍼졌다. 지금 이 나라들은 포스트-포디즘적 방식을 통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세계시장에서 승부하고 있다.
서비스업 중심의 포스트-포디즘 경제 모델을 인지-문화 경제(Cognitive-Cultural Economy)라고도 부른다. 인지-문화 경제의 대표적인 예는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의 중심 LA, 예술과 금융이 발달한 뉴욕, 영어의 종주국이라는 이점을 살려 세계적 범위의 서비스업을 제공하는 런던, 찬란한 역사와 문화의 유산을 브랜드화하여 판매하는 파리 등이 있다.
한국도 최근 영화와 TV 프로그램, 음악 등 문화 컨텐츠 부문에서‘한류’현상이 일어나고, 정보기술 분야에서 세계 정상의 수준을 달리는 등 인지-문화 경제라 여겨질 만한 특성을 일부 보이고는 있으나, 아직까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 수준의 본격적인 인지-문화 경제로는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88만원 세대>와 같은 저서들에서 한국은 아직까지 포스트-포디즘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고 제조업이 고도화된 것도 아니다. 한국에는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많지만, 대부분 포디즘적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철강, 제지, 석유화학, 기계, 부품 등 중간재 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섬유 등 더 이상 가격과 기본적인 품질 경쟁력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경공업이나 소비재 산업에서도 아직까지 포디즘적 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등의 추격을 받고 있는 섬유, 의류 산업의 경우 저가격 전략에서 벗어나 신소재 개발 등의 차별화 전략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와 학계에서는 아직까지 포스트-포디즘으로의 산업 구조 전환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현재 한국의 산업구조에는 큰 문제가 없으니 성장 및 투자 환경 개선(우파)이나 분배의 개선(좌파)에만 신경 쓰면 된다는 듯한 생각이 지배적이다. 우석훈과 같은 이들은 한국 경제학계에서 비주류에 속한다.
아무튼 한국 경제는 현재 포스트-포디즘적 경제를 이미 실현하고 있는 선진국과 포디즘적 방식으로 빠르게 부를 증식해 가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사이에 끼어있다. 중국 등이 포스트-포디즘적 발전단계에 진입하기 전에 미리 산업의 고도화를 이루어서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우위를 점해야만 한다. 만일 한국 경제가 포스트-포디즘으로의 전환에 실패한다면 성공의 영광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