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호] 책 읽기의 방법(4)-훑어보며 읽기와 건너뛰며 읽기➀

맛있는 글쓰기, 말랑말랑 독서

2018-03-25     박영민(국어교육) 교수

이번 호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해 보자. 우리 학교 신문에서 이 글을 찾아 읽는 독자 여러분은 글을 읽을 때 모든 글자를 빠짐없이 보는가?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에 모든 글자를 빠짐없이 주목하며 읽는가? 이것은 글을 읽을 때 글자 하나하나에 모두 눈동자를 맞추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자신의 읽기 경험을 되돌아보고 글을 읽을 때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보라. 물론 대답하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읽기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펼쳐지는 활동이어서 글을 읽을 때 자신이 눈동자를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독서교육 전문가들로부터 구할 수 있다. 독서교육의 방법을 연구해 온 전문가들, 그 중에서도 읽기와 눈동자 움직임의 관계를 추적해 온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기대나 예상과는 달리 독자들은 글을 읽을 때 모든 글자에 눈동자를 고정하지 않는다. 글에 등장하는 단어 중 단지 50~75%에만 시선을 고정시킨다. 이러한 현상은 독자의 나이, 언어의 종류 등과는 무관하게 매우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반듯반 듯 우리 국어로 작성된 글이든, 꼬불꼬불 러시아어로 작성된 글이든 상관없이 독자들은 글을 읽을 때 50~75%의 단어에만 주의를 기울이며, 이제 막 홍길동의 변신술에 마음을 빼앗긴 어린이든, 어쩔 수 없이 책보다는 베개를 더 좋아하는 어른이든 상관없이 50~75%의 단어에만 눈길을 준다.
읽기 부진에 빠진 학생이라면 조금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독자들은 눈동자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며 글을 읽지 않는다. 눈동자가 글자 위를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다가 도약하며 단어를 건너뛰기도 하고, 읽기의 진행을 멈춘 채 각 행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에는 거의 눈동자를 고정하지 않는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독자들의 이러한 행동적 특성은 글의 내용을 예측할 수 있는 정도가 높을수록 더욱 빈번하게 나타난다.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 예측이 가능하면 가능할수록 눈동자가 단어에 고정되는 비율이 줄어든다. 글에 쓰인 단어 중 50%에만 눈동자가 고정되었다면 그것은 75%를 고정했던 글에 비해 내용 예측이 수월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보건대, 독자들은 글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모든 단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내용 이해에 필요한 단어에만 선택적으로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독자가 보이는 이러한 특징적인 눈동자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하여 다음과 같은 효과적은 읽기 방법 두 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하나는 글을 탐색하거나 조사하듯이 훑어보며 읽는 방법으로, 다른 하나는 단어나 문장, 또는 문단을 건너뛰며 읽는 방법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글을 읽는 독자의 눈동자는 바로 이러한 두 가지의 특징적인 모습을 매우 생생하게 보여준다. 독자 여러분도 지금 이 글을 이러한 방법으로 읽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서 언급한 이 두 가지 방법은 사실 눈동자 움직임을 추적해 온 독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이른바 ‘18세기의 독서 혁명’을 이끈 특징적인 읽기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18세기에 형성된 독서 혁명기에 이미 훑어보며 읽는 방법과 건너뛰며 읽는 방법이 쓰였던 것으로 보아 이 두 가지 방법은 읽기 자료가 큰 폭으로 늘어나던 18세기 무렵에 정착되었던, 그러니까 눈동자 움직임을 조사하기 이전에 이미 수립되었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읽기 자료가 크게 증가함으로써 독자들은 글을 선택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그 결과 이러한 읽기 방법이 자연스럽게 창안되고 정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때 자리를 잡기 시작한 이러한 읽기 방법은 그 이전 시대의 읽기 방법과는 크게 달라서 독서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독서 혁명’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훑어보며 읽기는 SQ3R에도 잠깐 단역으로 등장을 한 바 있다. 기억이 나는지 모르겠지만 SQ3R에서는 ‘훑어보기’로 안내했었다. 훑어보며 읽기는 금속 탐지기를 동원하여 모래밭에서 잃어버린 금속 반지를 찾는 것처럼 독자 자신이 필요로 하는 내용을 발견해 내는 읽기 방법이다. 눈동자를 굴려가며 글자 위를 달려가다가 ‘툭 튀어나온 단어’, 즉 독자 자신이 필요로 하는 내용의 단어를 찾아내고 그 부분에서 눈동자를 멈춘 채 주의를 집중하여 보는 방법이 훑어보며 읽는 방법이다. 금속 탐지기로 반지를 찾을 때에도 삐삐 소리가 나는 지점을 집중적으로 다시 검색하는 것처럼, 글을 쓴 필자 중에 친절한 사람은 중요한 단어가 툭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게끔 작은따옴표와 같은 문장 부호를 써서 미리 표시를 해 두기도 한다. 필자가 아니라 편집자가 이러한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훑어보며 읽는 방법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독자 자신이 필요로 하는 내용을 마음속에 핵심적인 단어로 표현해 두어야 한다. 핵심 단어를 염두에 두고 글을 빠르게 훑어보면서 검색을 하고, 그것과 관련된 내용을 발견하였을 때 멈추어 서서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읽는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것도 다소 연습이 필요하다. 안내할 내용이 더 남았지만 약속된 지면이 다 찼으므로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이어가기로 하자.